사람의 행복과 불행에는 원인이 있습니다.
세간에는 여배우들은 대부분이 불행하게 살고 있다는 인식이 있습니다.
정확한 통계는 없지만, 사람들의 체감상 느끼기에 틀림없는 사실같습니다.
게다가 톱스타일수록 결혼 생활이 불행에 빠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런데 보기 드물게 행복한 결혼 생활을 하는 톱여배우도 있죠.
바로 김희애입니다.
김희애의 행복한 결혼생활에도 당연히 이유가 있습니다.
바로 그녀의 성격과 가치관 덕분이 아닐까 합니다.
김희애의 성격은 도전적이지 않고 안전지향적이며, 현재의 삶에 만족할 줄 아는 성격이니까요.
김희애와 이찬진의 러브스토리를 설명한 후, 김희애의 성격을 나타내는 두 가지 사건, 그리고 이찬진이 한때 매국노라고 비난받던 사건을 짚어보겠습니다.
김희애 리즈시절 사진
1967년 4월 23일 출생한 김희애는 불과 17살의 어린 나이에 영화로 데뷔합니다. (1983년 영화 스무해 첫째날, 데뷔작)
이런 어린 나이에 연예계에 입문하면 가치관이 제대로 성립되기가 무척 힘들텐데, 김희애는 예외같습니다.
(김희애 고향) 제주도 제주시 (김희애 제주도 사투리도 구사함)
(김희애 학력 학벌) 우이초등학교, 혜화여자중학교(혜화여중), 혜화여자고등학교(혜화여고) 중앙대학교 연극영화학과 학사, 중앙대학교 신문방송대학원 석사
(김희애 종교) 천주교
(김희애 프로필 및 경력) 영화 불의 회상, 내사랑 짱구 등에도 출연하지만 주로 드라마 애정의 조건, 겨울 나그네, 아들과 딸, 폭풍의 계절, 사랑과 결혼, 아내의 자격 등에 출연하면서 드라마 스타로 이름을 날립니다. 그리고 광고 퀸으로서도 대단한 명성을 누리죠.
김희애 어린시절 젊었을 때 학창시절 사진
그런 김희애가 선택한 남자는 뜻밖에도 벤처 사업가 이찬진이었습니다.
김희애와 이찬진을 소개해준 사람은 바로 김희애의 형부였습니다(김정환 당시 현대전자 근무).
다만 형부가 학교다닐 때가 아니라, 사회에 나간 뒤에 친했진 후배였습니다.
김희애: "찬진씨가 형부의 서울대 공대 후배예요.
현대전자에서 일하는 형부가 컴퓨터 업무차 찬진씨와 개인적인 접촉을 하면서 평소에 눈여겨 보았다고 해요."
이찬진은 1965년 10월 25일 인천에서 태어났고(고향). 올해 나이가 50살입니다. 김희애와 나이차이는 2살 연상이죠.
(이찬진 학력 학벌) 제물포고등학교, 서울대학교 기계공학과
(이찬진 프로필 및 경력) 한글과컴퓨터 대표이사 사장, 한컴네트 대표이사 사장, 드림위즈 대표이사, 데이콤 사외이사, 전경련 e-비즈니스위원회 운영위원, KT 사외이사
그리고 잠깐 정치도 하는데, 제 15대 신한국당 국회의원(비례대표)였습니다.
원래 김희애의 이상형은 이찬진과 거리가 멀었습니다. 그녀가 한창 인기있던 드라마 아들과 딸(1992년)을 할때는 이렇게 말했죠.
김희애: "착하고 똑똑하고 섬세한 남자가 좋아요. 외모도 좀 보는 편이고요."
하지만 김희애가 선택한 남자는 착하고 똑똑하기는 한데, 섬세하거나 외모가 잘난 남자는 아니었습니다.
김희애 형부의 성격이 세심하지가 않아서, 김희애는 소개팅 자리에 상대에 대해서 거의 모르는 상태로 나갑니다.
"내 대학후배인데 컴퓨터를 아주 잘 아는 친구다."
김희애는 이 정도만 알고 나갔던 것이죠.
그런데 첫만남에 둘은 서로 호감을 품게 되는데, 그 후에 2주동안 서로 연락을 하지 않습니다. 이찬진은 주선자가 당연히 다음 약속을 정해주리라고 기대하면서 기다렸고, 김희애는 남자로부터 연락이 오지 않자 차였다고 생각한 거죠.
(이찬진이 소개팅에 대해서 잘 몰랐네요.)
결국 김희애 형부가 두번째 만남을 주선했고, 두 사람은 본격적인 연애를 시작합니다.
김희애: "비오는 날 만났는데 남편 구두 밑창이 떨어져서 양말이 비에 젖어 마룻바닥에 양말 자국이 있었다. 좋게 말하면 겸손한거지만 옷도 너무 못입고 별로였다."
이찬진이 좀 소탈하고 자기 옷차림에 대해서 거의 신경쓰지 않는 성격같네요. 소개팅 문화에 대해서도 몰랐던 것을 보면 주로 공부와 사업쪽에만 신경을 쓴 거 같습니다.
그리고 당시 붐이 일었던 IT에 대하여 김희애가 이찬진으로부터 배우면서 둘은 사랑을 키우기 시작합니다.
김희애; "남편에게 이메일을 보내는 방법을 배웠다. 그 때는 보낼 사람이 없어서 남편에게 메일을 보내고 남편이 나에게 답장을 보냈다."
김희애: "한 번은 메일을 보내고 몇 시간 후에야 답장이 왔는데 정말 짧게 왔다. 그 사람은 일을 할 때 메신저로 간단명료하게 습관이 되서 그렇게 보냈는데 나에게 샤프하고 멋있게 느껴졌다."
이찬진 역시 김희애에게 푹 빠집니다.
김희애 신랑 이찬진: "평소 같이 있으면 편안한 여자, 또 상대를 설득할 줄도 알고 설득당할 줄도 아는 그런 사람을 이상적인 결혼상대자로 생각해왔습니다. 하지만 주위에서 그같은 여자가 어디 있냐, 그러다간 평생 장가 못간다고들 놀려댔습니다. 그러나 희애씨를 만나면서 이 여자가 바로 그 여자다 싶었습니다."
김희애; "만난지 한달만의 일이다. 한번은 둘이 식당에서 밥을 먹고 나오다 찬진씨가 크레디트 카드로 계산을 하는데, 서명란에 '이찬진'이라고 자신의 이름 석자를 적는 것이 아닌가. 그때까지 그의 이름을 '창진'으로 알았던 나는 깜짝 놀라 되묻지 않을 수가 없었다."
김희애: "그런데 데이트를 마치고 집에 데려다주는 쪽은 찬진씨가 아 니라 나였다.
운전면허증만 있지 운전을 하지 않는 찬진씨는 주로 택시나 지하철 등 대중교통수단을 이용하는 편이라 둘이 만나면 자가운전자인 내가 꼭 승용차로 찬진씨를 대방동집까지 바라다주고 방배동 우리집으로 돌아오곤 했다."
이렇게 김희애와 이찬진의 연애 방식은 보통의 남녀와는 좀 다른 방식으로 진행되네요.
그리고 이찬진이 프러포즈를 합니다.
김희애: "찬진씨가 밑도 끝도 없이 내게 "다이아몬드 반지는 받을 생각도 하지 말라"는 말을 건네왔다. 바로 프로포즈 아닌 프로포즈였던 것이다. 은근히 근사한 말을 기대했건만 프로포즈치고는 정말 싱거웠다."
김희애 이찬진 결혼 사진(웨딩 화보)
하지만 김희애 역시 이런 '싱거운 프러포즈'를 받아들이고, 둘은 1996년 9월 결혼식을 올립니다. 처음 만난지 불과 4개월만의 결혼이었죠.
여기까지가 김희애와 이찬진의 러브스토리이고, 몇가지 김희애의 성격을 알려주는 사건을 짚을 필요가 있습니다.
김희애의 좌우명은 '손해를 보더라도 착하게 살자'입니다. 그녀의 실제 성격 역시 자신이 손해를 보더라도 남들과 다투는 일을 피하는 것으로 잘 알려져 있습니다.
김희애의 성격은 위에서도 언급했지만, 크게 두가지가 특징적입니다. 첫번째는 현실 안정형(현실 순응형)이고, 두번째는 물욕이 크게 없습니다.
예를 들어서 김희애는 1987년 KBS 라디오 MC·DJ 13인의 노래 모음 에 참여해서 노래를 부릅니다. (김희애 나를 잊지 말아요.)
당시 김희애는 KBS 라디오 DJ를 하다가 어쩔 수 없이 노래를 부르게 되었죠.
(당시 김희애는 21살의 나이 어린 배우여서 방송국의 눈치를 보지 않을 수가 없었죠)
김희애 - 나를 잊지 말아요 (1987) (HQ) .
노래 실력도 괜찮았고, 곡도 크게 히트를 칩니다. 하지만 김희애는 자신의 체질이 가수가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고는 두번 다시 가요계쪽으로 외도를 하지 않습니다.
보통의 사람이라면 성공 가능성이 있으면 안해본 분야라도 도전하기 마련인데, 김희애는 별로 욕심을 부리지 않죠(김희애 일화).
현실 안전형의 성격때문인 거 같네요.
둘째 김희애는 물욕이 별로 없습니다. 세간에는 이찬진의 재산이 엄청 많은 것처럼 루머가 퍼졌는데, 사실 실제 재력은 별로 크지 않습니다.
짧게 설명하면, 이찬진은 1992년 전후로 '한국의 빌 게이츠'라는 별명을 얻으면서 큰 명성을 얻습니다. 전 국민이 쉽게 사용할 수 있는 '아래아 한글' 문서를 개발했기 때문이죠.
하지만 당시에 소프트웨어 사용료라는 인식이 전혀 없었기에 대부분의 한국인들은 그냥 불법 복제를 해서 무료로 사용합니다. 당연히 한글과 컴퓨터의 경영은 날로 어려워집니다(그외의 원인으로 이찬진의 경영 능력 역시 별로 좋지 않습니다. 한컴 재정이 괜찮을 때, 뻘짓(방만한 경영)도 좀 하거든요).
어쨌든 이렇게 해서 이찬진과 김희애가 결혼할 무렵인 1996년에는 한컴의 경영 악화에 대한 기사가 몇번 나갑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신경을 쓰지 않죠.
그러다가 1997년 IMF 외환위기가 오고, 한컴 역시 경영 악화로 부도 위기에 직면하게 됩니다.
이때 이찬진은 빌 게이츠(MS)에게 한글의 소스코드를 팔려고 합니다.
당시 MS는 전세계에 워드 프로세스 시장을 장악했지만, 유독 한국에서는 한글때문에 맥을 추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귀가 솔깃한 제안이었죠.
결국 한컴은 1998년 5월 13일 1차 부도를 내고, MS와 협상을 거쳐서 6월 15일 이 사실을 발표합니다.
(한컴은 '한글'소스를 MS에 넘기고, 약 2천만달러의 투자를 받기로 하죠. 2천만달러면 지금 돈으로 약 210억원 정도인데, 당시 환율과 은행 이자가 극히 나빴기에, 실질적인 가치는 210억원의 세배 정도는 되는 거 같네요.)
그러자 '한글'을 넘길 수도 없다고 사람들이 일어서고, 대부분의 사람들이 기술 종속을 우려했으며, 일부에서는 이찬진이 매국노라고 욕을 하기도 합니다(당시 9시 뉴스에도 보도가 될 정도로 사회적인 파장이 컸음). 아마 당시 너무나도 많은 알짜 기업들이 헐값에 매각되는 광경을 보던 사람들의 불안감과 분노가 한꺼번에 이 사건에 몰렸던 거 같습니다.
평소에 소프트웨어를 많이 사줬더라면 그런 일이 없었을 텐데, 꼭 일이 터진 다음에 CEO를 욕하네요.(어쨌든 이 사건은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불법복제에 대한 심각성을 알려서, 소프트웨어 정품 사용에 대한 커다란 계기가 되었죠.)
위에서도 언급했지만, 이찬진이 뻘짓을 좀 하긴 했지만, 매국노 소리를 들을 정도로 큰 잘못을 저지르거나, 자기 이익을 챙긴 적이 없습니다.
(사실 일부 사람들의 무분별한 비난이 잘못된 것이긴 하지만, 환란이라는 건국이래 초유의 사태를 맞은 국민들이기에 우왕좌왕했던 것에 너무 날카로운 비판을 할 수는 없을 거 같네요.)
결국 이찬진은 자신의 주식 대부분을 내놓고 회사를 나옵니다. (그 후에 한컴은 '한글 815'를 내놓으면서 기사회생했지만, 여전히 주인이 여러 차례 바뀌는 등, 제대로 안착하지 못합니다.)
그쪽 내용은 너무 방대하고, 회사에서 쫓겨난 이찬진에 대해서 짧게 설명하면 망한 드림위즈를 인수해서 재기를 하려고 하지만, 이전과 같은 큰 성공은 하지 못합니다.
너무 많은 내용이네요. 아래 글을 참조하시기 바랍니다.
(새창열기)
2013/12/20 - 김희애 남편 이찬진 재산- 뒤바뀐 상황과 아들 교육
오히려 배우자보다 김희애가 돈을 더 잘 벌고, 건물 같은 투자도 잘 합니다.
이찬진은 한국의 벤처 1세대이고, 그가 주도해서 개발한 '아래아 한글'이 워낙 우리 국민들의 실생활에 큰 도움을 주었기에, 여전히 위명이 쟁쟁합니다(아마 한글 안써본 사람은 거의 없겠죠).
그렇기에 전경련 e-비즈니스위원회 운영위원, KT 사외이사 등의 직책을 맡습니다(이런 단체나 회사에서 서로 데려가려고 하죠).
그리고 여기서 나오는 연봉과 직접 운영하는 회사의 월급 역시 만만찮은 금액이겠지만, 그래도 김희애가 버는 수입보다는 훨씬 적은 것이 사실이죠.
김희애가 남편의 돈을 보고 결혼했다면, 남편이 1998년에 1차 부도를 내고 회사에서 쫓겨났을 때 아마 이혼을 했을 겁니다. 그 후에도 남편이 거의 20년 동안 재기를 하지 못하는 동안 참지 않았을 테죠.
이런 면을 봤을 때, 김희애의 가치관은 물질보다는 정신쪽에 있는 것이 아닐까 합니다.
(김희애 이찬진 부부 사이의 자녀로는 아들만 두명입니다.(이름, 이기훈, 이기현), 김희애 가족사진)
예전에 꽃보다 누나란 예능 프로그램을 보면서 많은 것을 느꼈습니다.
이승기야 아직 미혼이어서 제외하고, 윤여정이나 이미연은 이혼 후 돌싱이었고, 김자옥은 재혼한 상태였으며, 김희애만이 초혼으로 여태까지 잘 살고 있는 상태죠.
(새창열기)
2013/11/29 - 윤여정 남편 조영남 이혼사유, 대인배와 파렴치한 차이
2013/11/29 - 이미연 남편 김승우와의 이혼사유, 이른 결혼을 후회
(김희애 집안 공개)
윤여정이나 이미연이 전남편과 헤어지고 삶의 고통을 헤쳐나가는 용기를 비하하는 것은 아니지만, 당시 여행의 톱여배우 네명중에 굴곡없는 삶을 사는 것은 김희애뿐이라는 점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생각합니다.
아마 김희애의 성격과 가치관이 그녀를 이런 행복한 가정생활로 인도한 것이 아닌가 하네요.
일부 여자들은 김희애의 이런 성격이 현모양처를 흉내내는 내숭이라고 폄하하기도 하지만, 결혼한 후 거의 20년 가까이 이런 성격을 유지해왔다면, 내숭이 아니라 실제 성격이 아닐까 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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