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춘화 나이 결혼 남편 자식 재혼<과거정리>
가수 하춘화는 1955년 6월 28일 생으로 65세이며 1961년 만 6세 때 〈효녀 심청 되오리다〉라는 곡으로 데뷔하자마자 큰 인기를 모았으며 1991년에 총 공연 횟수 8,000회를 기록하였고 최다 개인 공연으로 기네스북에 등록되기도 했으며 현재까지 변함없는 인기를 누리고 있습니다.
하춘화는 전라남도 영암군 출신으로 자신의 어린 시절에 대한 기억에 대해 "라디오만 있던 시절에 노래가 나오면 어린 내가 엉덩이를 치며 박자를 탔다고 한다. 제가 노래를 한 번만 딱 들으면 금방 따라했다. 그래서 얘가 몇 곡이나 하고 적어봤더니 300곡을 흥얼거렸다고 한다“라고 설명했는데요. 당시 하춘화의 나이가 3살이었다고 합니다.
어린 하춘화의 재능을 알아본 아버지 하종오 씨는 하춘화를 서울 동아예술학원에 다니게 했고 거기서 8개월 동안 노래를 배우게 한 뒤 가수로 데뷔시켰다고 합니다.
당시 시기적으로 한국 전쟁이 끝나고 누구나 어려웠던 시절에 데뷔한 어린 하춘화의 노래는 많은 사람들에 희망과 즐거움을 안겨주며 주목을 받게 되었고 이후 11살 때인 1966년 '아빠는 마도로스'라는 노래를 발표해 크게 성공하면서 하춘화의 인지도가 생기기 시작합니다.
정식으로 1971년 음반을 발표, '물새 한 마리'가 히트했으며 1971년 고봉산과 '잘했군 잘했어'를 듀엣으로 불러서 이 곡으로 TBC에서 4년 연속 여자가수상을 수상하면서 어린 나이임에도 가수 이미자, 패티김, 김상희, 문주란과 함께 대한민국 대표 정상급 여가수로 성장하게 됩니다.
▣ 이주일과의 인연 / 폭발사건
하춘화는 이후 정상의 자리에 올랐으며 당시 무명 코미디언이었던 이주일에게 자신의 공연의 사회자를 제안하면서 두 사람은 인연은 시작됩니다.
이주일은 하춘화와 함께 일을 하면서 무명에서 벗어날 수 있게 되었고 "길거리에 나앉을 수밖에 없었던 내가 하춘화 덕분에 우리 집을 샀다"고 말하며 하춘화에 대한 고마움과 평생의 은인으로 여기며 존경했다고 하는군요.
이후 1977년 이리 역 폭발사고가 발생하면서 하춘화와 이주일은 큰 위험에 빠지게 됩니다. 당시의 기억에 대해 "엄청난 폭발음이 전주까지 들렸을 정도였다. 전쟁 난 줄 알고 이렇게 죽는구나 생각했다"고 설명했습니다.
이어 “이리시 전체가 암전 됐다. 공연장이 폭파되면서 내려 앉았다”라며 “그 순간 주일씨 목소리가 들렸다. 암전된 상태에서 구원과 같은 목소리였다"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주일씨는 탈출했는데 난 엄두가 나지 않았고, 결국 주일씨의 머리를 딛고 탈출했다"고 말했는데요. 이후 이주일은 하춘화를 구출하여 병원까지 업고 뛰어가서 무사할 수 있었다고 합니다.
반면 하춘화를 구한 이주일은 두개골이 함몰되는 전치 4개월의 중상을 입었다고 하는군요.
▣ 하춘화 결혼 이혼
하춘화는 1979년 학업과 결혼 준비로 은퇴를 선언, 1981년 사업가인 정운창씨와 결혼을 했지만 활동을 재개하고자 한 하춘화와 전남편 정운창 씨와의 의견차이로 1년도 되지 않아 이혼을 하게 됩니다.
이후 다시 가수로 복귀해 '우리 사랑 가슴으로', '연인의 부르스' 등의 노래를 히트시켰으며 1985년에는 남북 예술인 교환공연으로 하춘화가 대한민국 최고의 가수 자격으로 평양에 가서 3박 4일 동안 공연을 하기도 했습니다.
▣ 하춘화 재혼
하춘화는 1995년 6살 연상인 KBS 기획조정실장이었던 이인순 씨와 재혼을 했으며 하춘화는 “언니의 친구를 통해 중매로 남편을 만났다”고 밝혔습니다.
이어 하춘화는 “내 히트곡이 뭔지도 모른다”라며 중매인 줄 모르고 나갔지만 줄담배를 피우는 남편의 첫인상은 좋지 않았다고 하는군요.
소개를 받은 후 1년 동안 연락이 없었다고 하는데요. 당시 이인순 씨는 가수인 하춘화로 인해 자신까지 유명세를 타는 것이 부담스러웠다고 하는군요. 이후 고민 끝에 만나야겠다고 결심, 1년 뒤 크리스마스 디너쇼에서 재회할 수 있었다고 합니다.
하춘화와 남편 이인순 씨 사이에 아이가 없으며 “결혼한 뒤 얼마 지나 아이가 생겼다. 하지만 유산된 뒤 아이가 생기지 않는다"고 말하며 "모든 일에 대해 서두르지 않고 순리대로 일을 진행하고 싶다"라고 털어놓았습니다.
이어 “하늘이 공평한 게 나에게 큰 재능을 주셨지만 아이는 안주시나보다 생각했다. 그래서 입양도 생각했는데 주변에서 말리더라. 그런 마음이 있으며 고아원을 많이 도와주라고 하더라. 그래서 많이 도와주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하춘화는 그동안 200억 원이 넘는 기부를 해온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기부에 대해 “때마다 하는 게 아니라 연중무휴로 한다”라며 “19살부터 기부를 했는데 그 당시 서울의 100평 집을 200만~300만 원이면 샀다. 당시 공연비는 몇백에서 몇천이었다. 받으면 바로 현금으로 기부했다.”설명했습니다.
하춘화는 1991년 총 공연 횟수 8,000회를 기록함에 따라 개인 최다 공연으로 기네스북에 등록되기도 했으며 지금까지도 공연을 이어오며 많은 사랑을 받고 있습니다.
그녀는 받은 사랑만큼 사회에 환원하며 공연을 위해 꾸준하게 자기관리를 해오고 있다고 하는데요. 앞으로도 건강한 모습으로 멋진 무대를 오랫동안 보여주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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