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라면 SBS에서 방영되었던 '야인시대'라는 드라마를 보았거나, 최소한 들어본적이 있었을 것이다. 일종의 남자들의 로망이었던 드라마라고 할 수 있다.
야인시대는 과거 실존인물들의 삶을 재구성한 드라마인데, 과연 실존인물들의 실제모습은 어땟을지 같이 알아보도록 하겠다.
야인시대를 알아보기 이전, 우리나라 주먹들이 등장하는 드라마들의 계보를 살펴보도록 하자.
1989년 제작 무풍지대
나도 처음 들어보는 1989년에 제작된 무풍지대라는 드라마이다.
이 드라마는 실제로 야인시대 작가였던 이환경의 작품으로 동대문 사단이었던 유지광의 자서전 '대명'을 원본으로 하여 만들어졌다.
유지광의 자서전으로 만들어졌으므로 당연이 주인공은 유지광이었다.
유지광 (배우 나한일)
이정재 역할은 작고한 배우 조경환
또한 1992년에는 특정 인물을 주인공으로 한 것이 아니라 우리나라 주먹계 전반을 소재로 다룬 1992년 적색지대가 있다.
이것역시 이환경 작가의 작품이다. (이환경 작가는 이런 작품들 전문인가보다.)
주인공은 배우 이동준이 맡았다.
여기서부터는 기억이 난다. 내가 너무 재밌게 봤던 왕초라는 작품이다.
주인공은 거지왕 김춘삼을 소재로 했다.
김두한을 주인공으로 2002년 제작된 야인시대
역시 이환경 작가 작품
야인시대에 등장했던 시라소니를 주인공으로 한 주먹 드라마의 마지막. 감격시대.
망하다시피 했다.
번외로...
작품성은 가장 뛰어나다고 볼 수 있는 박상민 주연의 장군의 아들도 있다.
참고로...
장군의 아들에는 내가 좋아하는 배우인 오연수가 나오는데 정말 미인으로 나온다.
김두환의 첫사랑인 박인애 역할로 나온다.
야인시대에서는 배우 정소영이 이 역할을 맡았다.
개인적으로 후자가 더 내 스타일.
...
<김두한>
1918~1972
우리나라 조폭의 시초이자 반공 주먹
국회의원
독립운동가 김좌진 장군의 아들 (논란이 있었는데 아들인건 확실히 맞다)
누가 기침소리를 내었는가.
안재모
왕초에서는 이훈이 맡았던 김두한 역할 (조연시절 이서진)
그러나 개인적으로는,
장군의 아들 박상민이 그나마 실제 김두한과 더 잘어울린다고 본다.
실제 젊은 시절 실제 김두한을 보면,
무쌍커풀의 얼굴이 살짝 박상민과 닮은 부분이 있다.
잠고로 왼쪽은 심복인 유도 고수 김무옥
김무옥은 실제 키가 185cm 정도였다고 하는데
비교해보면 김두한도 180cm의 당시로써는 매우 큰 거구였다.
저 당시 김두한의 나이가 21살이었다
생각보다 깔끔한 시절도 있었다.
보통 과거가 미화된 다고는 하지만, 피지컬을 보면 확실히 위협적인 듯 싶다.
나이를 먹고 살이 붙기는 했다.
그 유명한 국회 오물 투척 직전 당시국회의원 김두한의 모습이다.
김두한이 실제 김좌진 장군의 아들이냐 아니냐는 논쟁은 별로 의미없다.
1930년에 이미 조선일보에서 김좌진 장군의 아들 김두한의 모습을 소개하고 김두한의 생모인 김계월의 사진까지 보도했었다.
실제 김두한은 독립투사라기보다는 살아남고 이기는 방법을 잘 아는 전략가에 가까웠다.
일제시대때는 독립운동가의 아들이라는 명분과 일본 야쿠자-경찰과의 대립을 교묘히 저울질해서 실리와 명분을 모두 챙겼다.
실제 김두한은 강제징용에 끌려가기 싫어서 교묘히 반도의용정신대라는 조직을 만들어 조선총독부에 은밀히 협조하기도 했고 하야시와도 몇 번 다투기는 했지만 결국 말로 담판을 져서 당시 큰 수익이 났던 하야시 소유의 자전거 대여소 지분을 차지하기도 했다.
싸움도 마찬가지였다.
분명 김두한은 싸움을 잘하긴 했지만 자신이 패할 싸움은 애초에 시작하지도 않고 피하거나 합의로 풀고 어쩔 수 없이 꼭 싸워야한다면 급소를 노리거나 기습을 하는 수법으로 승리를 가져갔다.
김두한의 별명이 잇뽕, 즉 한방인 것은 한방에 끝내야 승리를 확실히 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즉 야인시대에 묘사되는 오랜 시간의 전투는 거짓말이라고 봐야 한다.
어떻게 보면 김두한은 제대로 싸울 줄 아는 전문가가 맞을 수도 있다.
실제 김두한은 손이 굉장히 작고 여자 같아서 일부로 발기술을 연마했다고 한다.
이는 김두한의 절친으로 영화 장군의 아들에 서브주인공으로 나온 김동회의 증언이다.
김두한은 타고난 잔머리로 해방 및 한국전쟁때 반공 노선으로 이승만-박통 정권 아래에서 살아남았고
심지어 국회의원도 해먹었다.
이정재를 비롯한 무수한 거물 주먹들이 잡혀서 사형당할 때 말이다.
실제 김두한은 처세의 달인이라고 보는 게 맞을 것 같다.
<시라소니 이성순>
1916~1983
우리나라 최초이자 최후의 순수 파이터라고 볼 수 있는 주먹
제일 시라소니 실제 얼굴에 근접한 드라마 속 모습은,
배우 박건식이 연기한 무풍지대 속 시라소니다.
실제 시라소니 이성순은 박건식처럼 살짝 졸린 눈에 머리도 살짝 빠진 모습이다.
시라소니의 부고 기사인데 여기서 가운데 시라소니 모습을 보면 굉장한 거구인 걸 알 수 있다.
실제 키 177cm로 당대에서는 장신이었다.
시라소니 이성순은 신의주의 부농이었던 이기정의 아들이었는데 유복한 어린 시절을 보내다 갑자기 가세가 기울면서 달리는 열차에 타고 내리며 목숨걸고 밀무역을 하는 도비노리를 하며 순발력을 기른 것으로 알려져있다.
시라소니라는 별명은 동물 시라소니가 아니라 평안도 사투리로 쓸모없는 놈이라는 의미라고 한다.
시라소니 싸움의 특징은 체계가 있는 것이 아니라 어릴 때부터 아무나 누가 싸움 좀 한다면 다짜고짜 찾아가 시비걸며
싸우고 지고 이기고를 반복하며 얻어진 완전 실전이라는 점이다.
어떻게 보면 도장깨기를 한 미야모토 무사시와 비슷하기도 하다.
다만 이성순은 스스로 고백하길,
타고난 싸움꾼은 아니고 어릴 때부터 숱하게 맞고 지고를 반복하며
체력 훈련도 열심히 하고 틈틈히 백두산도 올라가기도 하묘 다져진 노력의 결과라고 말했었다.
주특기는 공중걸이 박치기 니킥.
엘보우 무기로는 단검의 고수였다고 한다.
시라소니 이성순은 엄청난 애처가로도 유명한데 사진 오른쪽에 있는 부인 이진옥은 당대 이름난 미녀로 유명했다.
이진옥은 시라소니가 너무 못생겨서 싫었었는데 시라소니가 자기들 친척들 있는 곳에서 쌍권총을 올려놓고,
"진옥이와 결혼안시켜주면 이 자리에서 다 죽여버리겠다"고 협박했었다고 얘기한 바 있다.
그러고 나서 결국 결혼하긴 했는데 시라소니가 정말 엄청 자상하게 평생 챙겨줬다고 한다.
시라소니가 주먹 생활을 정리하고 교회에 입문한 것도 부인의 간청 때문이다.
시라소니의 아들은 현재 목사이다.
참고로
시라소니는 생전에 자신을 소재로 만든 만화 감격시대를 비롯한 여러 작품이 실제 사실과 다르다며 작가에게 직접 따지러 간적도 있다고 한다.
<구마적>
1907년 ~ 60년대
본명은 고시형 (고희경은 잘못 알려진 것)
현재 웹에 떠도는 실제 구마적 사진들은 다 가짜이다.
실제 사진은 확인된 것이 없음.
장군의 아들에서 묘사된 구마적이다.
이원종이 연기한 제일 유명한 구마적.
...
자동차 정비소 정비공 출신으로 183cm에 110kg 정도 나가는 거구였다고 한다.
머리가 보통 사람 2배 정도에 싸움이 붙으면 무조건 사람을 잡아서 던져버렸다고 한다.
힘이 장사라서 당시 악명 높았던 만주 마적떼같은 놈이라고 해서 별명이 '마적'
구마적이 된 이유는 후에 등장하는 또다른 주먹인 엄동옥(욱이 아님)에게 팔씨름을 져서, 엄동옥이 새로운 마적, 즉 신마적이 되고 고시형은 옛날 마적, 즉 구마적이 된 것이다.
창씨개명한 이름은 타카야마 이사오(高山勲) 속칭 망나니패라고 불리는 종로 우미관 인근 폭력 조직의 우두머리였었다.
위 신문기사를 보면 김두한이 구마적의 부하였던 것은 맞다.
나중에 김두한이 직접 노변야화라는 라디오 프로그램에서 풀은 썰에 의하면, 고시형이 너무 횡포가 심해서
자기가 직접 야밤에 몰래 우미관 뒤로 불러서 기습 발길질로 팼다고 한다.
근데 김두한의 말을 들어보면 "마적 고시형은 힘이 워낙 장사라서 잡히면 무조건 죽으니까 기습으로 한방에 보낼 수 밖에 없었다"고 한다.
구마적 힘이 무진장 셌던 건 김두한도 인정한 셈이다.
웃긴 건 구마적은 해방 이후 김두한의 소개로 한국 노총 관련 일을 맡았다고 한다.
심지어 구마적의 여조카는 나중에 김두한과 동거하기도 했었다.
사망은 1960년대로 추정된다.
<신마적>
1908년 ~ ?
본명은 엄동옥 (엄동욱이 잘못 알려진 것)
현재 웹에 떠도는 실제 신마적 사진들은 다 가짜이다.
실제 사진은 확인된 것이 없다.
장군의 아들에서는 배우 김형일이 맡았다.
야인시대에서는 배우 최철호가 연기하였다.
...
평양 출신으로 보성전문학교(현 고려대학교)를 졸업하고 일본 유학을 다녀온 당대 엘리트 주먹이다.
구마적과 비교해도 꿀리지 않는 체격의 소유자로 씨름 고수였다.
일본 유학시절 야쿠자와 싸우다 칼에 맞았는데도 싸움을 이기고 웃으며 병원가서 상처를 치료했다고 한다.
후에 종로 YMCA를 장악하고 학생패의 두목이 된다.
마적 고시형을 팔씨름으로 이기고 새로운 마적이라는 의미의 신마적 칭호를 얻는다.
여기서 구마적이 일부러 신마적에 팔씨름을 져줬다는 말이 많은데 실제 엄동옥은 고시형보다 정말 훨씬 힘이 셌다고 한다.
엄동옥에 대해서는 평이 엇갈리는데 장군의 아들에서는 지식인에 가까운 모습으로 김두한을 교육시키고 지원해주는 스승에 가까웠다면, 야인시대에서는 개망나니에 가깝다.
다만 1935년 동아일보 기사에는 종로 밤거리를 공포로 몰아넣는 폭력집단의 패왕 신마적이라는
기사가 있는 걸 보면 위 두가지 썰을 합쳐서 보는게 맞을 듯 싶다.
엄동옥은 일본군 장교의 양자로 당시 종로에서 일본경찰의 눈치를 별로 안봤다고 한다.
구마적과는 호형호제한 사이였는데 구마적이 기습으로 김두한에게 깨지자 신마적이 김두한을 찾아가 싸움을 걸었고
여기서도 김두한이 또 이겼다고 한다.
나중에 신마적은 중국으로 건너갔는데 일본군 장교 양자라는 빽으로 삼합회 구역을 접수했다는 후문이다.
나중에 해방 이후에서는 서울로 돌아와서 가끔 김두한과 커피도 마시고 했다고 한다.
의외로 단도의 명수였다고 한다.
<김기횐-쌍칼>
? ~ ?
김두한의 실제 스승.
원래 우미관의 우두머리로 기계체조 선수 겸 권투 선수 출신이다.
당시 종로 야시장의 우두머리였던 쌍칼과는 다른 인물인데 드라마에서는 두사람을 쌍칼로 통칭해서 캐릭터로 만들었다.
장군의 아들에서 나온 김기환이다.
장군의 아들에서 나온 쌍칼 (배우 김승우)
두 캐릭터는 비슷하게 모두 김두한의 스승같은 역할이다.
야인시대에서는 위 두 역할을 짬뽕해서 쌍칼=김기환으로 합쳐버린다.
배우는 박준규이다.
참고로 박준규는 1999년 왕초에서도 쌍칼로 나왔다.
<하야시>
장군의 아들 하야시
야인시대 하야시
실제 하야시
...
평안도 출신으로 본명은 선우영빈이다.
젊은 시절 일본으로 건너가 현 일본 우익 및 야쿠자의 대부
도야마 미쓰루(두산만) 밑에서 야쿠자 생활을 시작.
한국으로 건너와 하야시패로 당시 경성내 야쿠자들을 총 지휘.
김두한과는 처음에는 티켝태격했지만 김두한이 나중에는 형님으로 모시고 잘 지냈다고 한다.
사업 지분도 많이 김두한에게 나눠줬다고.
해방 후에는 한국에 정착해서 건설업에 종사했다.
<이화룡>
1914 ~1983
실제 이화룡의 모습
명동 황제
박치기를 잘해서 별명이 평양 박치기였다.
키 175cm로 당대에서는 상당한 장신이다.
상당히 호방한 성격으로 유명했다.
정치와는 거리를 두고 예술적 안목이 높아서 문학 및 영화 제작에 많은 신경을 썼다.
이정재가 사형당할 때 이화룡이 무사했던 건 이런 처신 때문이다.
후에는 기독교에 귀의해서 목사가 되었다.
시라소니에 몇 안되는 진정한 조력자이다.
신사적이어서 평이 항상 좋았다.
<이정재>
1917 ~ 1961
왕초에서 이정재 (배우 정준호)
야인시대 이정재 (배우 김영호)
실제 이정재
이천 출신 씨름 천하장사.
키 175cm
우리나라 정치깡패의 효시
휘문고보를 졸업하고 경희대학교를 나온 엘리트 주먹이다.
원래는 경찰이었고 후에 동대문을 기점으로 당대 넘버원 전국구 조폭이 된다.
그 배경에는 이승만의 최측근 이기붕의 더러운 일을 도맡아하는 정치 깡패 역할이 있었기 때문이다.
후에 이천에서 국회의원이 되려고 했지만 이기붕의 출마로 좌절된 뒤 은퇴했다가 5.16 군부정권에 의해서
사형당한다.
성격 자체는 경우가 바르고 지식이 깊었으며 카리스마가 좋았다.
사형 직전까지 변명도 안하고 차분했다고 한다.
<임화수>
1921 ~ 1961
왕초에서 임화수 (배우 박철)
야인시대에서 임화서 (배우 최준용)
실제 임화수
본명은 권중각인데 어머니가 임씨 성을 가진 계부와 재혼하면서 임화수로 개명했다고 한다.
이정재 동대문 사단의 2인자.
우리나라 문화예술계의 대부로 자비로 영화 20편을 제작할만큼 예술적 안목은 높은 편이다.
드라마에서는 야비하고 싸움도 못하는 듯한 묘사가 많은데 실제 임화수는 극장 소매치기 출신으로
이정재를 만나기 전에 순수 주먹 실력만으로 자신만의 조직을 갖고 있던 싸움꾼이었다.
임화수의 이미지가 왜곡된 것은 유지광의 자서전 대명에서 묘사한 것 때문.
실제 임화수에 대해서는 당대의 주먹들이 모두
"임화수 그 사람은 타고난 싸움꾼이야"라고 입을 모음
실제 김희갑, 최무룡 구타사건만 봐도 보통 수준의 주먹 실력은 아님.
인성이 개차반인 건 맞는데 의외로 여자 특히 여배우에 대해서는 무척 신사적이었다고 한다.
원로 여배우 김지미는 평소 임화수를 개쌍놈으로 알고 있었는데 의외로 엄청 젠틀하고 경우에 바른 모습을 본 뒤 놀랐다고 자서전에 적어놨다.
후에 김지미는 임화수를 사형 직전에 면회한 유일한 여배우이다.
임화수는 엄청난 효자였는데 나중에 사형 법정에서 이정재를 배신하고 난동을 피운 것은
자기가 죽으면 어머니를 봉양할 사람이 아무도 없었기 때문이라는 분석도 있다.
<유지광>
1927 ~ 1988
야인시대의 유지광 (배우 유태웅)
실제 유지광
이천 출신 정치깡패.
단국대학교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하고 육군 중위로 전역한 엘리트 주먹이다.
이정재 동대문 사단의 실력자.
생각보다 싸움실력은 별로 였다는 말이 많다.
하지만 유지광은 대학 시절 축구선수이기도 했고 나름 운동을 좀 했던 건 맞다.
주로 권총을 잘 썼다고 한다.
전략가 스타일로 국회의원 시절 김두한을 많이 약올린 장본인.
박통 군부정권 때 사형 판결을 받았지만 명확하고 정확한 논리적인 변론과
이정재를 감싸는 의리를 보여 무기 징역으로 감형되고 후에 출소한다.
박통이 유지광의 남자답고 의리있는 걸 맘에 들어했다고.
후에 이천으로 돌아가 사업가로 활동했으며 자서전인 대명을 냈다.
이걸 소재로 만든 드라마가 바로 무풍지대.
장례식 때는 야쿠자와 삼합회 간부들이 조문을 올 정도로 대단했다고 한다.
이런 유명한 말이 있다.
'경기도 이천에 특별한 주먹은 없고 다만 예전에 유지광이 있었다'
<신상사>
1932년 ~ 생존
야인시대에서는 오상사라고 나온다.
현재 신상사의 모습
본명 신상현
키 178cm로 당시에는 장신이다.
원래 씨름을 했었고 후에 동대문 사단에 들어가 실력자로 활동.
현재 살아있는 주먹 중 유일하게 실제 김두한-시라소니-이정재를 모두 만나본 사람이다.
별명이 신상사인 이유는 헌병 상사 출신이기 때문.
후에 김두한-이정재에 이은 전국구 조폭인 신상사파의 우두머리가 된다.
보통 조양은에 의한 명동 사보이 호텔 사건으로 은퇴했다는 말이 있는데, 당시 현장에 신상사는 없었고
오히려 나중에 조양은 일파를 일망타진해 결국 조양은에게 사과받았다고 한다.
삼청교육대에서도 살아남고 범죄와의 전쟁에서도 살아남은 진정한 전국구 건달.
최근에는 회고록을 출판하고 조용히 지내고 있다.
...
참고로 시라소니 이후 진정한 파이터는,
대구 출신 조창조라는 건달이다.
이 양반은 특별한 세력없이 독고다이로 살았는데 한번도 싸움에서 진적이 없다 한다.
본인이 밝히기로는 굉장히 전략적으로 약게 싸워서 재빨리 급소를 치거나 한방에 보내는 방식으로
시간을 오래 끌지 않는게 비결이라고 밝혔다.
실제 본인의 싸움스타일은 현재 MMA와 비슷하다고 말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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