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호근 장윤선 러브스토리와 인생 이야기
탤런트 겸 영화배우 정호근의 인생은 좀 파란만장합니다.
인생에 이렇게 많은 시련과 고난이 닥친 사람도 드문 것 같은데, 정호근은 잘 이겨냈네요.
정호근: "내가 어릴 적에 천둥번개가 치는 날 마당에서 실성한 듯 춤을 췄는데, 할머니는 그저 조용히 쳐다보고만 계셨다. 큰 병원에 가서 뇌파검사를 하고 아무 이상 없다는 판정을 듣고서야 안심할 정도로 부모는 겁을 먹었었지만, 정작 할머니는 어린 손자의 얼굴을 보며 앞으로 크게 될 거라는 말씀만 하셨다."
# 목차
* 정호근 가족 무속인
* 정호근 과거고백
* 정호근 아내 장윤선 러브스토리
* 정호근 자녀 잃은 슬픔
* 정호근 아들 사망
* 정호근 신내림 고백
* 정호근 정릉자택(정호근 신당 위치, 주소, 정호근 대명원)
* 정호근 가족에 대한 사랑
정호근 무당 옷 사진
* 정호근 가족 무속인
정호근의 친할머니는 무속인이었습니다.
정호근: "할머니께서 무속인이었는데 그 영향인지 어려서부터 정신세계에 대해 관심이 많아 관련 서적을 많이 읽었고, 그간 무속에 대해 편견이 없이 살아 왔다."
정호근: "친할머니는 8남매가 잘되기를 바라는 마음에 하루가 멀다 하고 깊은 산으로 치성을 드리러 다녔다. 그러다가 어느 날 신내림을 받았고, 아버지 사업이 불같이 일어났다. 대전 땅 대부분을 소유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였다."
하지만 정호근 아버지는 하루 아침에 망하게 됩니다.
정호근: "아버지가 망했을 때, 제가 '아버지는 왜 잘나갈 때 신을 그렇게 홀대했어?'라는 얘기를 했대요. 집안이 다 개종했을 때도 저는 왜 조상 대대로 내려오는 민족 종교를 홀대하고 천시하게 됐는지 언젠가 밝힐 거라는 생각을 했어요."
정호근 과거 사진
제일 처음에 정호근의 큰누나에게 무병이 찾아왔고, 정호근 집안 전체가 기독교로 개종을 합니다. 하지만 무병이 이번에는 정호근의 여동생에게 다시 찾아왔죠.
정호근: "여동생이 무병으로 곧 죽을 것 같은 상황이 되자, 제가 내림굿을 받게 해줬어요. 오빠의 도리를 한 거죠."
정호근: "앉은뱅이가 된 여동생 살리겠다고 거금 들여서 굿을 할 때도, 아내는 '막내 아가씨 인생이 걸린 문제'라며 돈 얘기 한 번 안 했어요. 제가 성질이 불같아서 아내 가슴에 멍들게 하는 짓을 자주 했는데, 아내가 정말 고생 많이 했죠."
(정호근 아내(부인) 장윤선(이름)에 대해서는 밑에서 추가 언급)
이렇게 정호근 집안은 무당을 멀리했고, 정호근 역시 그 영향을 받습니다.
정호근이 성인이 되어서 연기자가 되었으며, 특히 악역 연기에 두각을 나타냅니다.
(배우 정호근 프로필 및 경력)
1984년 MBC 공채탤런트 7기로 데뷔
1996년 드라마 ‘사과꽃 향기’에서 철두철미한 보도국장을 연기하면서 악역 배우로 각광을 받았고, 대표작으로 ‘여명의 눈동자’‘상도’‘왕초’,‘정도전’ 등이 있습니다.
정호근 젊은시절 사진
* 정호근 과거고백
하지만 정호근은 악역때문에 마음앓이도 많이 하게 됩니다.
정호근: "그 동안 악역 하면서 욕 많이 먹었거든요. 밥 먹으며 제 연기를 보다가 밥상을 던져서 TV가 깨졌다는 댓글이 있질 않나, 촬영장에서 돌을 던지는 사람이 있질 않나, 욕 들은 건 말할 것도 없고요."
정호근 부인: "남편이 악역을 자꾸 맡아 나쁜 이미지로 각인될까봐 걱정이다. 실제로는 순수하고 반듯한 사람이다."
사실 악역 역시 드라마와 영화에 없어서는 안될 존재입니다.
다만 일부 대중들이 악역 배우에 대하여 편견을 가지고 있는 것이 문제죠.
연기는 연기일뿐, 현실과 착각하지 않았으면 합니다.
* 정호근 아내 장윤선 러브스토리
정호근은 연기자 생활을 하던 1995년 아내 장윤선을 만나서 결혼하게 됩니다.
(정호근 배우자 와이프 장윤선)
정호근: "일반인 아내와는 소개로 만났다. 처갓집을 방문했는데 그냥 아무렇지 않게 벗어놓은 내 재킷을 알아서 정리하는 아내의 모습에 반했다."
정호근: "그때 내 눈빛이 물음표에서 느낌표로 변하면서 ‘저 여자는 조선의 여인이다’고 생각돼 결혼을 결심했다."
정호근 아내 사진
장윤선: "남편이 3번 만나고 결혼하자고 프러포즈하더라, 결국은 나도 ‘네’라고 답했다."
장윤선: "나 역시 남편을 세 번 만나니깐 감이 왔다. 자꾸 맞는 부분이 많았다. 인연인 것이 운명처럼 느껴졌다."
3번만에 서로 결혼을 결심했다니, 정말 운명같은 사랑을 한 것이 아닌가 합니다.
이후 정호근 부부는 총 5명의 아이를 낳게 됩니다.
(정호근 자녀 자식)(정호근 가족관계)
하지만 그중에서 딸 한명과 아들 한명을 잃게 되었죠.
정호근: "95년 결혼해 그해 첫딸 유진이를 가졌어요. 그런데 아내가 임신 7개월에 접어들 무렵 갑자기 몸의 혈압이 높아지고 양수가 줄어들어 아내와 태아가 모두 위험해졌어요. 결국 임신 29주 만에 첫아이를 낳았는데 그때 아이의 체중이 755g이었죠. 인큐베이터 안에서 5개월 이상 키웠는데도 퇴원 후 산소호흡기를 집에 비치해놓을 만큼 병치레가 잦았어요."
정호근: "하지만 아이의 병세는 갈수록 악화됐고 생후 27개월 만에 세상을 떠났어요. 저는 당시에 아이를 치료할만한 병원을 찾기 위해서 미국에 가 있다가 급히 돌아왔죠."
정호근: "큰 딸은 폐동맥 고혈압으로 죽었어요."(정호근 딸 사망원인)
3년동안 키웠던 딸을 잃었다고 하니,
그 애간장이 얼마나 탔을까요...
정호근 가족 사진
* 정호근 자녀 잃은 슬픔
정호근 "아내와 함께 장례식을 치렀고, 경기도 팔당 근처에 아이의 유골을 뿌렸어요. 하지만 유진이가 없는 삶은 지옥 같았어요."
3년뒤에 정호근 아내는 둘째 아이를 임신하게 되지만, 첫딸을 잃은 슬픔과 죄책감에서 헤어나지 못합니다.
정호근: "한번은 아내와 크게 다퉜어요. 그런데 다음 날 아침 일어나보니 아내가 사라진 거예요. 불길한 생각이 들었죠. ‘건강한 아이를 낳지 못해 미안해. 좋은 여자를 만났다면 이런 고생 안 했을 텐데…’ 하던 아내 말이 떠올라 급히 딸의 유골을 뿌린 곳으로 갔어요."
실제로 정호근 아내는 이곳에 있었습니다.
장윤선: "사실 그곳에서 자살을 하려고 했어요. 그런데 막상 죽으려고 하니 배 속 아이가 발길질을 심하게 하더라. 꼭 살려고 발버둥치는 것 같았어요."
정호근: "그곳에서 자책하고 있는 아내에게 ‘유진이에 대한 모든 걸 가슴에 묻자’며 용서를 구했어요."
결국 장윤선은 남편 정호근을 용서하게 되었고, 둘의 관계는 다시 회복됩니다.
보통 이런 위기가 이혼으로 연결되기도 하는데, 정호근 부부는 다행히 서로에 대한 신뢰를 잃지 않았네요(정호근 이혼 위기 극복).
장윤선이 아들 동섭이를 무사히 낳았지만, 이후 연년생으로 낳은 딸 혜민이는 첫아이때와 마찬가지로 위험한 상황에 빠지게 됩니다.
정호근: "결국 아내를 미국의 큰 병원으로 급히 옮겼고, 혜민이는 32주 만에 세상에 나왔어요. 이후 혜민이는 한 차례 고비를 겪었지만 2개월간의 인큐베이터 생활을 한 끝에 건강을 되찾았죠. 제 품에 안겨 잠든 혜민이를 보면서 ‘유진이도 이곳에 왔더라면 살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결국 한 아이의 생명은 구했지만, 정호근의 죄책감은 영원히 사라지지 않을 것 같네요.
결국 정호근은 아내와 가족들을 미국에 남겨두고 홀로 한국으로 돌아오게 됩니다.
* 정호근 아들 사망
한국과 미국을 오가며 정호근은 기러기 아빠 생활을 하게 되는데, 마지막으로 쌍둥이를 낳게 됩니다.
정호근: "쌍둥이가 위험했어요. 그래서 미국의 병원에서도 ‘양수가 부족해 아이가 위험하다. 발육상태가 좋지 않은 한 아이를 유산시키는 게 낫겠다’는 거예요. 청천벽력 같은 소리였죠. 미국 병원의 의사가 만류했지만 누구 하나도 포기할 수 없었어요. 결국 7개월 만에 쌍둥이를 낳았는데 남자아이는 3일 만에 세상을 떠났고 수원이(6)만 남게 됐죠."
결국 정호근은 아들을 미국 달라스에 묻게 됩니다.
이후 아이들은 건강하게 잘 자랐고, 후에 한국으로 돌아오게 됩니다(그러다가 다시 미국으로 돌아감).
정호근: "미국에 있을 때 이따금씩 아이들을 데리고 달라스 묘지로 가서 “하늘나라에 있는 네 동생에게 인사해야지” 라고 해요."
정호근: "먼저 세상을 떠난 누나와 동생 때문인지 동섭이와 혜민이의 꿈은 의사라고 하더군요."
자식을 하나 잃어도 그 슬픔이 한량없을 텐데, 정호근 부부는 그런 슬픔을 두번이나 겪었네요.
다행히 이들 부부는 그 커다란 슬픔을 잘 극복하게 됩니다.
* 정호근 신내림 고백
아마 정호근의 무병에는 이렇게 아이들을 잃은 슬픔도 작용했던 것 같네요.
정호근: "과거 두 아이를 잃은 아픔을 겪은 이후 정신세계에 예전보다 더 깊이 관심을 갖게 되었다. 또 마음이 어지럽거나 편치 않을 때면 절이나 암자를 찾아 마음을 다스리기도 했다."
정호근: "평소에도 직감과 예지력이 뛰어나 동료들에게서 신기 있다는 소릴 많이 들었다."
그러다가 정호근은 2014년 큰 병을 앓게 됩니다.
정호근: "이상하게 아프기 시작했어요. 여기저기 병원에 가도 나아지지 않고. 간, 위, 장, 콩팥 다 깨끗해요. 말짱하다가도 '이러다 죽는 거 아니야' 싶을 정도로 아팠어요. 고통을 말로 표현할 수가 없어요. 무엇보다 정신이 혼탁해지고 황폐해지는 게 느껴졌어요. 두 달 동안 5, 6kg이 빠졌지요."
정호근은 이렇게 병을 앓다가 아는 역술인에게 전화를 합니다.
정호근: "병원에서 이상이 없다는데 왜 이러냐고 하니까 그분이 단번에 ‘뭐가 왜 이래, 무병이지’ 하는 거예요. 그 대답에 올 것이 왔구나 싶었어요."
위에서 언급한 것처럼 정호근의 할머니가 대전에서 이름난 무당이었고, 정호근의 누이들 역시 무병을 앓은 적이 있었기 때문이죠.
결국 정호근은 무속인이 되기로 결심합니다.
* 정호근 정릉자택(정호근 신당 위치, 주소, 정호근 대명원)
정호근: "무속인이 되기 위한 코스도 정식으로 밟았어요. 계룡산, 태백산, 일월산, 인왕산, 백마강 등 6곳의 산과 한 곳의 물을 밟는데, 그게 신의 제자가 되겠다고 신고하는 의식입니다. 마지막에 국사당에 가서 문고(무당의 증서)를 받고 3일 후에 내림굿을 받았죠. 음력 윤달 9월 22일이 이젠 제 생일이에요."
정호근은 신당까지 직접 차리고 사람들을 받게 됩니다.
정호근: "저는 떳떳하고 솔직해요. 무속에 대한 편견도 없어요. 어떻게 보면 무속인들은 옛날 우리나라의 사제들이잖아요. 사람들의 가십거리가 될 수도 있지만 내 변화를 굳이 감출 필요는 없다고 봅니다. 집에 신당을 차렸는데, 1월 1일부터는 점도 볼 생각입니다."(정호근 정릉 자택에 신당)
이렇게 정호근이 신내림 받은 연예인중의 한명이 되었네요.
참고로 정호근 자택(정릉집)은 정릉의 북악산 골짜기에 있는 신당 대명원입니다.
(주소가 개인정보이기에 여기서 공개할 수는 없지만, 일반 단독 주택이 아닌 가정집 빌라이고, 대명원을 찾으면 쉽게 찾을 수가 있죠.)
(참고로 정호근의 전화 번호 역시 아직 공개하지 않고 있죠. 010 8728 45**)
정호근: "과거에 아내에게 '내가 사람들을 상담해주면 어떨까?'라는 얘기를 한 적이 있는데 제발 참아달라고 하더라고요(웃음). 이제 기사가 나가면 다들 알게 되겠지요. 집사람, 참 착한 여자예요."
정호근: "아이들은 5년 동안 같이 지내면서 아빠가 아침이면 신당에 옥수 올리고 절하는 걸 봤거든요. 아마 충격이 크지는 않을 거예요. 왜 그랬느냐고 물으면 '너희들 잘되게 하기 위해 그러는 거니까 열심히 공부만 하면 돼'라고 말해줄 거예요. 우리 애들이 착해서 '네'라고 할 거예요."
* 정호근 가족에 대한 사랑
정호근: "비록 제가 무속인이 되었지만, 앞으로도 여니는 계속할거에요."
정호근은 무당임을 스스로 밝히면서, 은연중에 종교에 의해서 탄압을 받게 될지도 모르겠네요.
정호근: "방송국이나 언론사 사람들은 자기들 힘들면 제일 먼저 살려달라고 찾아가는 곳이 무당집이면서 왜 방송은 안 된다는 건지 모르겠어요. 만약 저에게 임무가 있다면 그건 아마도 무당의 권익 옹호와 사회의식 개선을 위해 노력하라는 것이 아닐까 싶어요."
정호근: "비록 이런 이슈 거리, 두 번째 직업(무당) 때문에 그 일(연기)이 만약 허물어진다 하더라도 언젠가는 안방극장에 복귀할 수 있다 그런 확신을 갖고 있습니다."(정호근 연기 복귀 열망)
정호근: "'어디 가서 점을 봤는데 탤런트 정호근이 보더라'라는 얘기가 먼저 나오게 하고 싶지 않았어요. 또 아니라고 거짓말을 하면서 살고 싶지도 않았고요. 가만히 생각해보니까, 일단 신을 받았으면 떳떳하게 세상 사람들에게 알리고 배우도 하고, 무당도 하자는 결론이 나왔어요. 신내림을 받고 나서는 상담을 필히 해야 해요. 그건 신과의 약속이거든요."
세상에 수많은 사람들의 숫자만큼 다양한 인생들이 있지만,
정호근만큼 굴곡 많은 사람의 인생도 별로 없을 것 같습니다.
정호근: "저는 극과 극을 살아본 사람이에요. 인생 굴곡이 참 많았어요. 뭐든지 열심히 하는 것만으로는 안 된다는 걸 느꼈고요. 운이 없으면 절대로 안 되더라고요. 죽 올라갈 거 같다가도 뚝 떨어지고. 그런 경험을 많이 겪다 보니 저 자신과 직업에 대한 회의도 느꼈죠. 그러다 자식들도 잃게 되면서 피눈물을 흘린 날들도 많았고요."
비록 정호근이 자식 잃은 슬픔을 가지고 있을 뿐만 아니라, 무당에 대한 편견 역시 받고 있지만, 앞으로는 행복하게 잘 살았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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