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타는 청춘 김도균 신효범 나이(차) 과거 결혼 비하인드>
불청 대표 공식 커플 김도균과 신효범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습니다.
2021년 1월 5일 불타는 청춘에서는 신축년 새해 첫 여행지로, 웅장한 대청호를 품은 대전광역시로 떠났는데요, 이날 마지막으로 등장한 신효범은 도착하자마자 도균을 찾으며 이모&이모부 러브라인의 불씨를 지폈습니다.
지난 강화도 여행 이후 반년 만에 만난 두 사람은 시작부터 의도치 않은 커플룩으로 텔레파시가 통했는데요, 이에 지켜보던 청춘들은 오랜만에 재회한 두 사람을 보며 설렘을 감추지 못했습니다.
이어진 점심 준비에서도 신효범과 김도균의 썸은 계속 이어졌는데요, 맛있는 요리를 보며 흥이 오른 신효범은 순간 도균에게 "여보"라 불렀고, 이를 들은 김도균은 순간 당황을 숨기지 못하며 역대급 바리케이드를 치는 바람에 보는 이들을 박장대소하게 만들었습니다.
하지만 신효범은 계속되는 방어에도 굴하지 않으며 "난 도균만 바라본다"라고 언급해 청춘들을 흥미진진하게 했는데요, 사실 두 사람은 과거 결혼할 뻔 했었다고 하네요.
앞서 지난해 7월 방송에서 최성국은 김도균에에 "신효범과 잘 어울린다. 두 분이 사랑했으면 좋겠다. 두 분이 열애한다는 신문 기사를 보고 멤버들이 확 놀라면 좋겠다"라고 말했는데요, 이에 신효범은 김도균에게 "우리 사랑할까"라고 강조해 웃음을 자아냈습니다.
그러자 김도균은 "뭔가가 있으려면 30대 때 있어야 했다"라고 선을 그었는데요, 이어 김도균은 "예전에 KBS 열린음악회에서 11명의 뮤지션이 모여서 공연을 하는 프로젝트를 했었다. 그때 끝나고 신효범과 마주 앉아 식사를 했다"
"그때 홍서범이 우리를 보더니 너네들 결혼해라라고 했다"라며 과거 일화를 털어놨는데요, 이에 신효범은 "원래 홍서범 오빠는 나만 보면 누굴 붙여주려고 했다"고 맞받아쳐 웃음을 자아내기도 했습니다.
한편, 김도균과 신효범 두 사람 나이차이는 김도균은 1964년생이 58세이고, 신효범은 1966년생인 56세로 김도균이 신효범도바 2살이 더 많다고 하는데요, 잘 되었으면 좋겠네요.
<김도균 프로필 나이 고향 가족 키 학력 소속사 집안 과거 어린시절 음악계 입문 계기 데뷔 후 활동 근황>
-김도균(백두산), 김도균 프로필 나이 고향 가족 키 학력 소속사
김도균은 1964년 5월 11일생으로 올해 나이 58세입니다. 김도균 고향은 대구광역시 남구이며, 1남 2녀 중 막내로 태어났다고 합니다. 김도균 가족으로는 사촌 동생 전혜진(탤런트)이 있습니다.
김도균은 키가 185cm라고 하구요, 김도균 학력은 대구남도국민학교(전학), 대구교육대학 부속국민학교, 경복중학교, 영진고등학교 중퇴로 알려져 있습니다. 김도균 현재 소속사는 백두산엔터테인먼트 소속이라고 합니다.
-김도균(백두산), 김도균 집안 과거 어린시절
잘 알려지지는 않았지만 어릴 때부터 김도균의 집안은 잘 사는 집안이었다고 합니다. 김도균 아버지는 대구에서 섬유 회사를 경영했다고 하는데요, 이러한 유복한 환경에서 자란 김도균은 어렸을 때 천체물리학자를 꿈꾸며 미술과 음악에 흥미를 가진 평범한 소년이었다고 합니다.
김도균은 중학교 입학 후 사촌형이 치던 전기 기타에 관심을 가진 것이 계기가 되어 록 음악에 입문하게 되었고 친구들과 함께 록밴드 중성자를 결성하여 활동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김도균 : "우리 학교(초등학교)가 당시 리코더 시범학교여서 리코더 합주 같은 걸 많이 했는데, 어쩌다보니 제가 상도 받고 경연대회까지 나가게 됐어요. 그 당시 연주했던 곡들이 세바스찬 바하나 헨델, 헨리 퍼셀 같은 바로크 음악들이었죠"
김도균 : "그런데 그런 음악들을 연주하면서 음악적으로 초강력한 뭔가를 체험하게 되었어요. 예를 들어서 피아노 전주에 맞춰서 리코더를 부는데, 이전가지 동요를 부를때와는 완전히 다른 새로운 세상을 접하게 되었어요. 전 그때를 제 연주 생활의 시작으로 봐요"
김도균 : "당시 부모님께서는 그냥 제 취미 생활이라고 생각하셨나 봐요. 기타가 4만원 정도 했는데 아무 말씀 없이 사주셨거든요. 그걸로 친구 집 지하실에 연습실을 차려놓고 밤낮으로 연습했는데, 무척 행복했어요"
이후 김도균은 고등학교 1학년을 마친 후 학업보다 음악에 더욱 관심을 갖게 되면서 스스로 학교를 자퇴하고 집을 나와 인근 야산에서 기타 연습을 하다가 1980년 초 대구의 한 클럽에서 기타 연주를 시작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김도균 : "중학교 때 처음으로 록음악을 듣게 되었어요. 경북대학교 보컬그룹 연습실에 가면 재밌다는 친구의 말을 듣고 따라 간 그곳에서 록음악을 처음 들었는데, 바로크 음악을 처음 들었을 때와 같은 충격 같은 것을 받았어요"
김도균 : "딥 퍼플의 차일드 인 타임은 충격 그 자체였어요. 키스 같은 밴드의 음악도 마찬가지였고요. 이전과는 다른 세계가 있다는 걸 발견한 거예요. 그때부터 록 음악에 빠져 살기 시작했죠"
김도균 : "고등학교를 딱 1년 다니고 보니 더 이상 학교에 다니기가 싫어졌어요. 당시 학교의 모든 것이 답답했어요. 그냥 기타들고 사회에 나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지금 생각해보면 당시 학교 다닐 때 교복을 입고 머리 깎는 데서부터 거부감을 느낀 것 같아요. 그게 고등학교 들어서 더 심해진 거죠"
김도균 : "집에는 학교 간다고 해놓고 집 근처 산에 들어가서 온종일 기타 연습을 했어요. 그렇게 일주일을 하니까 집과 학교에서 모두 알고 난리가 난 거예요. 1남 2녀 중 막내아들이 고등학교도 그만두고 음악하겠다고 하니, 호적에서 판다는 소리가 나올 수밖에 없었죠"
-김도균(백두산), 김도균 과거 음악계 입문 계기
하지만 김도규는 고등학교 1학년을 마친 상태에서 무작정 상경하여 낙원상가부터 찾았다고 합니다. 그때 낙원상가 가게 주인이 아는 뮤지션들로 4인조 록밴드 수레바퀴를 결성, 결국 김도균은 18, 19살때까지 나이트클럽 기타 반주자 생활을 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김도균 : 나이트클럽에서 밤늦게 공연이 끝나고 하숙집에 돌아오면 또 기타 연습을 했어요. 당시 톱 기타리스트를 따라 해보면서 계속 나 혼자 연마를 한거에요. 19살 겨울에는 설악산에 들어가서 두 달간 하드트레이닝을 하기도 했어요. 당시에 산에 가지고 들어갔던 피크 두 봉지가 모두 닳아 없어졌을 정도였죠"
김도균 : 당시가 제 인생에서 경제적으로 가장 힘들었던 때였어요. 물론 여전히 전셋집을 전전하지만, 그 당시에는 담배 살 돈이 없어서 김거리에 떨어진 담배꽁초를 주워서 피울 정도였거든요"
아마 당시의 김도균은 부모님으로부터 경제적인 지원을 받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집안이 부자였기 때문에 얼마든지 평안한 생활이 보장되었지만 김도균은 음악과 기타에 대한 열정때문에 생활고를 겪으면서도 음악을 포기하지 못했던 것입니다.
김도균은 그렇게 이태원동을 중심으로 활동하다가 그의 기타 실력이 소문이 나 결국 당시 메이저 레이블 중의 하나였던 서라벌레코드에 스카웃이 되었고 백두산의 리더 유현상에게 발탁되어 밴드 생활을 시작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김도균은 그렇게 유현상과 함께 3년 동안 록그룹 백두산 활동을 하게 되었는데요, 하지만 불과 3년 만에 백두산이 해체가 되었다고 합니다. 이유는 당시 사회 문화적인 배경이 김도균을 비롯한 록음악에 부정적이었고 그런 상황에서도 김도균 등이 순수 록음악을 지켰기 때문이었다고 하네요.
김도균 : "당시에 머리가 긴 남자는 방송에 출연할 수도 없었고, 또한 영어로 된 노래는 라디오에서조차 틀 수 없었던 시절이었어요. 돌이켜보면 국내의 사회적 문화적인 상황보다 백두산이 너무 앞서나갔던 것 같아요. 미국과 영국의 록 음악과 동시대에 나란히 서고 싶다는 욕심이 컸던 거죠"
-김도균(백두산), 김도균 데뷔 후 활동
이후 1986년부터 1987년까지 백두산의 기타리스트로 활동하던 김도균은 프로젝트 록 인 코리아에 참여한 후 영국으로 건너가 사랑이라는 밴드로 활동하다가, 이후 1990년 임재범과 함께 한국으로 돌아와 록 밴드 아시아나를 결성했지만 거의 전곡을 영어로 만들고 영국에서 녹음한 앨범이 국내에서 좋은 반응을 얻지 못했다고 합니다.
결국 라우드니스 오프닝 공연 이후 별다른 활동 없이 해산하고, 다시 백두산을 재결성하여 보컬리스트 겸 기타리스트로 활동하게 되었는데요, 이후 1999년 김도균 그룹을 거쳐 2009년부터 다시 록 음악으로 돌아온 유현상과 함께 백두산의 멤버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김도균은 2003년에는 김태원, 신대철과 함께 D.O.A. 라는 프로젝트 그룹을 결성하기도 했으며, 2010년부터 여러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하기 시작, 최근에는 특히 불타는 청춘을 통해 인기를 얻고 있습니다.
김도균은 흔히 대중들에게 부활의 김태원, 시나위의 신대철과 함께 한국 3대 기타리스트로 알려져 있으며 특히 과거에는 속주로 신대철과 자웅을 겨루던 인물로 알려져 있습니다. 김도균은 젊은 시절부터 록 음악과 국악의 결합을 계속 탐구하고 있다고 하는데요, 바로크 클래식음악과 메탈을 융합한 네오 클래시컬 메탈처럼 국악과 메탈을 결합하은 것이 목표라고 하네요.
김도균은 실제로 산조나 쾌지나 칭칭 나네 같은 국악 곡을 일렉기타로 커버하기도 했는데요, 국악과 메탈의 융합은 김도균뿐만 아니라 한국 록 뮤지션들 사이에서 자주 시도했던 것이라고 하네요.
-김도균 결혼하지 않은 이유
김도균은 아직 결혼하지 않은 미혼이구요, 현재 여자친구 유무에 대해서는 알려진 바가 없는데요, 없는 것 같네요. 그럼에도 김도균 결혼에 대해서는 김도균 이혼, 김도균 부인(아내) 등 루머가 돌기도 하는데요, 모두가 사실 무근입니다.
김도균은 과거 자신이 결혼하지 않은 이유에 대해 "결혼은 못한 것일 수도 있고, 안 한 것일 수도 있고요...사실 지난 세월동안 시간 가는 줄도 모르고 살았어요. 어떻게 보면 내 삶의 길, 음악적인 길을 찾는 데 너무 급급했다고 할까요"
이어 김도균은 "음악을 하고 또 음악인으로서의 해답을 찾기에 바빠서 다른 삶을 바라볼 수가 없었어요. 그리고 결혼을 하면 평범한 삶을 살아야 하잖아요. 거기에 대하여 제가 자신 없다기보다 상대방 입장에서 의심이 되나 봐요. 여자에게 끝까지 믿음을 제가 주지 못했던 거겠죠"
김도균은 특이하게도 국제 연애 경력이 꽤 많다고 하는데요, 과거 아일랜드 출신 여성과 사귈 때 여러 모로 잘 통하고 결혼 이야기까지 진지하게 나눈 적도 있다고 하네요. 그래서 아일랜드에 있는 여자친구 부모님까지 만나고 했지만 막상 결혼 이후를 생각하니 서로의 삶의 터전이 각자의 나라에 있다보니 결혼을 하게 되면 한 사람의 인생을 모두 버려야 한다는 생각에 결국 결혼하지 못했다고 합니다.
-김도균 독신 생활 편의점 식사
결국 김도균은 독신 생활을 하는데, 식사는 주로 편의점에서 했다고 합니다. 김도균은 독신 생활을 하면서 집 냉장고에 반찬이라는 게 하나도 없었다고 하네요. 그래서 매일 두 끼를 편의점에서 해결을 했다고 합니다.
재미 있는 것이 단골 편의점에는 주인이 세 번 바뀔 동안 매일 다녔다고 하네요. 그러다보니 김도균 편의점 포인트가 수십만점이 되었다고 하는데요, 10만점이면 실제로 100만원을 사용해야 얻을 수 있는 포인트라고 하니 어마어마하게 돈을 쓴거네요. 그래서 김도균은 포인트를 더 모아 디지털 기기를 살 생각까지 했다고 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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