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의 문화를 지키고 후손들에게 이를 대대로 이어주고 있는 이들을 우리는 애국자라고도 말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의복이라고 하면 한복을 빼놓을 수 없는데요.
한복하면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 바로 박술녀입니다. 박술녀는 한복연구가 중의 한 사람으로 박술녀 한복을 중심으로 활발한 활동을 펼치고 있고, 많은 패션쇼에도 참가하고 있습니다.
박술녀 한복 대중화
박술녀는 한복을 누구보다 사랑하는 인물로 한복의 대중화에 힘쓰는 인물입니다. 한복의 매치법에 대한 조언을 통하여 <한복은 급격한 유형은 없지만 소매의 길이나 폭의 길이에 변화가 나타나며 한복은 무조건적으로 몸을 가리는 의상이 아니고 속과 목손을 강조하는 의미가 있어서 우아함을 높이는 효과가 있다고 말을 했습니다.
박술녀는 1세대 한복연구가를 잇는 대표적인 한복연구가로 그녀이 스승은 이리자 선생입니다.
박술녀 어린시절 프로필
박술녀 나이는 1956년생으로 고향은 충남 서천입니다. 박술녀는 2남 5녀 중 한 명으로 태어나 가난한 어린시절을 보냈는데요.
앞을 못 보는 외할머니와 노름으로 재산을 잃은 아버지 등 가족들을 대신하여 생선 행상을 한 어머니가 생계를 꾸렸습니다. <하루 종일 생선과 함께한 어머니가 집안에 잔치가 있어 나가실 때는 꼭 한복을 차려 입고 나가셨다. 그 모습이 인상 깊었다>
<돈이 없어 학교도 제대로 가지 못할 딸에게 어머니는 전통은 사라지지 않는다며 한복을 배워보라고 권하셨고, 그 말 한마디에 한복 디자이너의 꿈을 키우게 됐다>
박술녀는 가난한 어린시절 언니를 따라서 남의 집에 식모로 들어갔습니다. 남의 아이를 돌보기에 어렸던 박술녀는 우는 아이를 보며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닫고 더욱더 꿈에 매진했지요.
<한복을 만들기 위하여 옷감 짜는 법을 알아야겠다고 생각해 방직 공장에 다녔다. 그곳에서 기술을 배운 뒤 1세대 한복 디장너 이리자 선생의 문하생으로 들어가 실력을 쌓기 시작했다>
박술녀는 26세에 한복의 전설이라는 이리자 선생의 문하로 들어가 한복을 배웠고 5년 만에 독립을 하여 자신의 가게를 차리게 됩니다. 박술녀는 이리지 선생으로부터 한복을 배우며, 한복에 미쳐살게 되는데요. 하루 4시간만 자고 팔이 움직이지 않을 정도로 바느질을 하면서 한복에 매달렸다고 합니다.
<아침 6시 30분에 일어나 메이크업을 하고 하루를 시작했다. 밖에 나가면서부터는 식사를 할 수 없을 만큼 바빠요. 그렇게 정신없이 일하다 밤 12시쯤에 집에 들어왔다. 이 순간은 다시 오지 않으니 최선을 다했다. 요즘 사람들은 참을성이 없다. 밥을 안굶어봐서 그런가 가만히 앉아서 감이 떨어지기를 바라기보다는 좀 더 적극적으로 대처를 해야겠다고 생각한다>
박술녀가 한복으로 이렇게 성공한 것에는 우리가 생각하지도 못한 엄청난 노력과 고생이 있었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되네요.
박술녀 남편 이원세
박술녀는 27번의 맞선 끝에 만난 남편과 결혼을 했습니다. 남편은 한 번씩 여행을 가고 1년만 딱 만나다 결혼을 하자고 했는데 내가 매달렸다. 애걸복걸하며 결혼하자고 애원했다.
박술녀 남편 이원세는 당시 체신공무원이었고, 안정적인 직장에 잘생긴 외모, 좋은 성격까지 모두 가지고 있었던 1등 신랑감이었습니다. 박술녀는 첫눈에 반해 적극적인 구애를 했고, 3개월만에 초스피드로 결혼을 하게 됩니다.
박술녀의 한복이 어느 정도 유명해지자 박술녀는 남편을 설득하여 자기 대신에 집안일을 맡겼습니다. 남편 역시 깊이 고민하다가 20년을 해오던 체신부 공무원을 그만두고 집안일과 육아에 나서게 되는데요. 자신의 공무원 생활보다 아내의 길을 열어주는 것이 더 좋다는 판단 때문이었지요.
당시 한국 사회에서는 쉽지 않은 선택인데요. 박술녀가 참 남편을 잘 얻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런 남편의 외조가 없었다면 불가능한 일이었으니까요....
그런데 박술녀는 이혼 위기를 겪기도 했다고 하는데요. 사소한 다툼이 실제 이혼까지 갈뻔한 것이지요. ,키우던 개의 식사를 제때 챙겨주지 못한 미안한 마음에 한꺼번에 개밥을 준 적이 있다. 이 때문에 남편과 말다툼을 벌였는데 남편이 이혼하자고 하더라. 결국 서초동 법원으로 이혼을 하러 갔다>
<이혼 도장을 찍기 전 남편에게 도장을 챙겨오지 않았따고 거짓말을 해 가까스로 이혼할 뻔한 위기를 넘길 수 있었다. 이혼하자는 말은 부부 사이에 절대로 해서는 안 될 금기어인 것 같다>
사실 박술녀 남편 이원세처럼 아내를 잘 이해하고 적극적으로 외조해주는 남자도 드물다는 생각이 듭니다. 박술녀가 이혼 위기를 잘 극복한 것은 참으로 잘 한 일인것 같네요.(박술녀 이혼, 박술녀 재혼은 사실이 아님)
아무튼 박술녀는 한복의 대를 이어가는 진정한 애국자라는 생각이 듭니다. 박술녀가 앞으로도 지금처럼 한복의 아름다운을 많은 이들에게 소개하고 계승해주길 응원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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