샘킴 러브스토리 및 인생 이야기
샘킴은 미국에서 합리적인(?) 혹은 이유있는(?) 인종차별을 받습니다.
그런데 그만의 독특한 방식으로 결국 그것을 극복해 냈네요.
그외에 샘킴의 여러가지 개인적인 생각과, 가정 생활 등이 무척 흥미로운 것 같습니다.
샘킴 아내 사진
요리연구가 샘킴(본명 김희태, 간혹 샘김으로 불림)는 1977년 5월 8일 서울에서 태어났습니다(샘킴 고향).
(샘킴 국적) 한국
(샘킴 학력 학벌) 한국에서 고등학교 졸업 후, 미국의 키친 아카데미 졸업
(미국의 3대 요리학교중의 하나)
(쉐프 샘킴 프로필 및 경력) 올토랑, 워터그릴, 모짜, 투릴루사 셰프를 역임했으며, 보나세라 총괄쉐프를 지냅니다.
2010년 미국 스타쉐프협회 아시아 스타쉐프로 선정되기도 합니다.
# 목차
* 어린 시절
* 샘킴 인종차별
* 샘킴의 오해
* 어머니의 구박
* 샘킴 군대 진짜 갔을까?(샘킴 군필 의문)
* 샘킴 부인과 가정적인 이유
* 샘킴 아내에 대하여 가정적
* 샘킴 레스토랑 위치
* 어린 시절
샘킴 셰프의 어머니는 생계형 요리사였습니다.
식당과 하숙집을 경영했죠.
샘킴: "어머니의 모습을 보며 요리와 자연스럽게 친숙해졌다. 초등학생 때부터 어머니 심부름으로‘채소가 싱싱한 곳, 생선이 싼 곳, 고기가 좋은 곳’등을 다녔다."
샘킴: "명절 음식을 어머니와 제가 다 했어요. 어릴 때부터 재래시장 쫓아다니면서 양손 가득 재료 사 들고 와 요리했거든요. 사실 처음에는 너무 싫었죠. 학원도 다니고 싶고 친구들과 어울리고도 싶었거든요. 그런데 제가 장남이고 남동생은 장 보기나 요리는 거들떠도 안 보니 저라도 어머니를 도와야겠다는 생각이었어요. 그게 제 요리의 시작이었죠."
샘킴: "어릴 때 꼬막을 까면서 어머니 일을 도와드렸는데 손님이 먹나 안 먹나 지켜봤다. 그런데 손님들이 다 드시더라. 그 모습이 정말 짠하고 좋았다. 그때부터 요리사가 되길 꿈꿨다."
샘킴 어머니 사진
그러다가 샘킴은 미국으로의 유학을 떠나게 됩니다.
샘킴: "1999년 8월 고등학교만 졸업하고 요리사의 꿈을 위하여 미국으로 유학을 떠났다.
샘킴: "그 당시 어머니께는 공부 열심히 해서 훌륭한 회계사가 되겠다고 했다."
어머니에게 샘킴이 거짓말을 했는데, 그 이유는 당시 어머니가 요리사를 천시했기 때문입니다.
샘킴: "어머니 본인이 요리사인데 그때에는 자식이 요리한다는 걸 창피해하셨다. 못 배우거나 할 것 없어서 한다는 생각을 하신 것 같다. 그래서 결국 요리 한다는 걸 친척들에게 비밀로 했고, 또 어머니한테 회계공부하겠다고 하고, (미국의) 주방에서 일을 했다."
이제는 어머니도 요리사가 결코 천시받는 직업이 아니란 것을 알 것 같네요.
다만 샘킴의 유학생활이 그리 쉽지만은 않았습니다.
샘킴: "내가 유학 갈때 아버지가 부도가 났었다. 결국 어머님이 제2 금융권에 저를 데리고 가서 삼백만 원 정도를 빌려주셨다. 그 돈을 들고 유학을 갔다."
결국 샘킴은 미국에 도착하자마자 아르바이트를 시작합니다.
7년동안의 미국 생활동안 놀러간 곳이 디즈니랜드와 할리우드일 뿐일 정도였죠.
샘킴: "새벽 세시에 일어나 삼십분을 걸어 공장에 출근했다."
샘킴: "곧 주방 보조로 들어가서 요리를 배우면서 돈을 모았다."
* 샘킴 인종차별
샘킴은 곧 LA의 이탈리안 레스토랑 '투릴루사'와 '모짜'에서 일하는 등의 실력도 인정받습니다.
(두 곳 모두 '미슐랭 가이드'의 찬사를 받는 유명 레스토랑임)
사실 처음에 샘킴은 미국에서 인종차별 아닌 인종차별도 받습니다.
샘킴: "(이탈리안 레스토랑에서 일할 때) 제가 동양인이라는 이유로, 파스타나 리소토 같은 음식들에는 프라이팬을 안 주더라고요. 그런데 그 이유란 것이, 만약 미국에서 김치찌개를 먹고 싶다면, 당연히 한국인이 하는 걸 먹고 싶어하는 것처럼, 이탈리안 음식은 이탈리아인이 하는 것을 먹고 싶어할 거란 이유였죠."
선입견이긴 하지만, 완전히 틀린 선입견이라고 할 수는 없는 것 같네요.
샘킴: "그 이유가 일부 이해는 가지만, 그렇다고 꼭 그 나라 사람만 잘하란 법은 없잖아요? 결국 안 되겠다 싶어서, 한번은 주방이 아주 바쁜 시간에 무작정 프라이팬을 잡고 파스타를 만들기 시작했어요. 저도 파스타를 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죠. 그 후로 자연스럽게 그 자리에 제가 서게 되었어요."
난관에 부딪혔을 때는, 때때로 과감한 용기도 필요한 것 같네요.
* 샘킴의 오해
그러다가 샘킴은 중요한 사건을 만나게 되었죠.
샘킴: "어느날 셰프가 어딜 같이 가자고 하더라. 그래서 아무 생각 없이 따라 갔는데, 거기는 집 없는 홈리스들이 모여사는 곳이었다. 셰프가 그곳에서 음식을 무료로 제공하고 있었다."
샘킴: "그때 내가 크게 잘못 생각하고 있었다는 걸 깨달았다. 당시까지만 해도 늘 최고만 쫓아다녔는데, 그 시선 자체가 틀렸구나 싶었다. 그 이후로 내가 만든 음식이 가치 있게 사용되는 것인가에 대해 생각하게 됐다."
이때부터 샘킴은 요리사의 사회적인 의미에 대하여 고민하고, 또 실천하게 됩니다.(밑에서 추가 설명)
이후 샘킴은 주방에서 실력을 쌓고, 또 7년 동안 학비를 모으게 됩니다.
샘킴: "원래 학교에 다닐 생각은 없었는데 호기심도 생기고 가 보고 싶더라고요."
사실 유명 셰프들은 학력이 그리 중요하지 않습니다.
실력과 경력을 가장 높게 치죠.
하지만 샘킴은 이탈리아 레스토랑에서 실력을 쌓다가 나중에 호기심으로 학교를 다니게 됩니다.
샘킴: "당시 7년 동안 일하며 모은 7만 불(9천만 원)이 있었는데, 학교 학비가 5천만 원 정도였어요. 수표를 써서 현금으로 학비를 단번에 결제해 버렸죠. 그때 전교생에게 이슈가 됐어요. 아시아인인데 엄청난 부잣집 아들인 것 같다고. 사실 제가 7년 동안 모든 재산인지도 모르고요."(샘킴 과거 오해 받은 이유)
* 어머니의 구박
이후 샘킴은 미슐랭 스타 레스토랑 근무 이력과 미국 3대 요리학교 수석 졸업의 타이틀을 가지고 한국으로 귀국하지만, 이후에도 어려움을 겪게 됩니다(2009년 귀국).
샘킴: "그 당시 많이 힘들었다. 예상은 했지만 그렇게까지 힘들 줄은 몰랐다. (요식업계에) 도울 일 있으면 연락달라고 여러군데 엄청 쫓아다녔다. 그런데 정말 한분도 연락을 안주시더라."
샘킴: "유학을 갔다오니 한국에서 일자리를 구하기 힘들었다. 처음엔 어머니가 엄청 뭐라고 구박했다."
샘킴: "당시 전형적인 백수의 모습이었다. 어머니가 그런 내 모습을 보시고 '뭐하러 왔냐? 다시 (미국으로) 돌아가라'고 하시더라. 하지만 그때 (어머니께)시간을 주시면, 열심히 하면 잘 될 거라고 했었다."
이후 샘킴은 보나세라 총괄쉐프로 자리를 잡게 되었고, 또 드라마 파스타의 주연 배우 이선균의 실제 모델로도 유명세를 치르게 됩니다.
샘킴: "내가 파스타의 실제 모델이다. 다만 드라마는 좀 과장된 면이 없지 않다."
실제 드라마 파스타에 단역으로 출연한 샘킴(새킴 과거 사진)
극중 이선균은 굉장한 카리스마를 선보입니다.
실제 쉐프들이 주방에서 무척 엄격하긴 하지만, 이선균만큼 카리스마를 풍기지는 못합니다.
드라마는 극화된 것이기에, 현실과의 차이가 있다는 것은 염두에 두었으면 하네요.
샘킴: "내가 운영하는 레스토랑에 유명 인사들이 가끔 찾아왔다. 김연아 선수도 예전에 한번 방문했었다. 당시 김연아 선수가 보는 앞에서 직접 요리를 했다. 그런데 (김연아가) 정말 미인이더라."
샘킴: "요리하면서 사람 앞에서 떨어본 적이 없는데 처음으로 손을 떨었다."
* 샘킴 군대 진짜 갔을까?(샘킴 군필 의문)
이렇게 스타쉐프로써 각광을 받던 샘킴은 '샘 & 레이먼의 쿠킹타임', 냉장고를 부탁해, 진짜 사나이 등의 각종 예능에 출연할 정도로 대중적인 인지도를 얻게 됩니다.
진짜 사나이에서는 큰 포부를 안고 취사병으로 지원했지만, 굴욕을 당하고 말았죠.
샘킴: "MBC 방송국측이 ‘진짜 사나이’를 통해 군대 음식을 바꿔보자고 제안했고, 나도 이 방송 활동이 내가 하고 있는 푸드 캠페인과 잘 맞지 않을까 해 출연하게 됐다."
샘킴: "취사병으로서 새로운 군대 레시피를 개발하고 싶다."
샘킴: "전 부대에서 내가 만든 요리를 맛 봤으면 한다. 그리고 이왕이면 제대로 바꿔보고 싶다. 군인들이 먹는 ‘짬밥’도 좋지만, 군인들이 내가 만든 별식도 먹어보면 좋지 않나. 군대에서 먹을 수 있는 맛있는 음식을 만들고 싶다."
이랬던 샘킴이 결국은 (1회에서) 요리에는 손도 대지 못하고, 배식담당과 설거지를 하게 됩니다.
유명 요리사의 굴욕 아닌 굴욕이네요.
그런데 샘킴이 과거에 군대를 갔다왔을까요?
샘킴이 아내에게 쓴 편지를 보면, 과거에 갔던 군대를 다시 왔다는 문구가 있습니다.
즉, 샘킴이 군필이라는 소리죠.
(다만, 보통 요리사들은 군대에서 취사병으로 많이 복무하는데, 샘킴의 경우는 편집이 되었는지, 어떤 주특기로 복무를 했는지는 나오지 않네요.)(샘킴 군필)
* 샘킴 부인과 가정적인 이유
샘킴은 아내를 스무살때 만나게 됩니다.
(아내 나이는 1살 연하임)
샘킴 아내: "내가 19살 때 남편을 처음 만났다. '만약 결혼한다면 이 사람이다' 하는 마음에 샘 킴과 결혼을 했다."
(샘킴 배우자 와이프)(샘킴 결혼)
이후 샘킴은 아들을 낳습니다.
(샘킴 자녀 자식)(샘킴 가족관계)
샘킴 아내 사진
샘킴 아들 사진
그런데 특이하게 아들 이름이 다니엘이네요.
미국 유학 출신이어도 보통 아들 이름은 한국식으로 짓는데, 샘킴 집안은 좀 독특한 것 같습니다.
샘킴: "(1대 100에서) 우승해서 상금 5천만원을 타면, 장인이 만든 칼세트 사고 싶다. 좋은 칼을 쓰면 채소, 고기, 생선이 잘 썰린다. 맛있는 요리가 나올 것 같다. 또 나머지는 좋은 일에 쓰겠다."
샘킴이 좋은 요리사로 인정받고 있기는 하지만,
여전히 좋은 도구에 대한 갈망을 숨기지 못하고 있네요.
* 샘킴 아내에 대하여 가정적
또한, 샘킴은 가정적인 것으로 무척 유명한 사실입니다.
샘킴: "일정이 너무 바쁘지만 내겐 항상 가족이 최우선이다. 일이 먼저고 그다음이 가족이었던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앞으로도 그런 일은 없다. 아내에게 한 약속을 꼭 지키겠다."
동료 요리사 최현석 역시 이를 증언했죠.
최현석: "샘킴이 정말 가정적이에요. SNS에서 늘 아들 자랑을 해요."
샘킴 이혼이라는 루머도 있는데, 이렇게 가정적이라면 가정 불화는 루머인 것 같네요.
요즘 샘킴이 본연의 직업인 요리사외에도 각종 방송 출연과 강연회 등의 여러가지 행사로 무척 바쁜데도, 가정을 최우선시하는 모습은 본받을만한 것 같습니다.
* 샘킴 레스토랑 위치
샘킴 레스토랑은 압구정역 근처에 있습니다.
도산공원을 찾아서 그쪽으로 걸어가다보면, 도산안창호 기념관이 있는데, 바로 그 반대편에 위치하고 있죠.
(도산 안창호 기념관을 물어도 되고, 요즘은 보나세라도 유명해져서 많은 사람들이 위치를 알고 있음)
(다른 요리도 좋지만 드라마 파스타처럼, 파스타로 아주 유명한 레스토랑임)
또한 위에서 언급한 것처럼 샘킴은 요리사의 사회적인 의미도 고민하고, 또 적극적인 활동도 하고 있습니다.
샘킴: "(미국 유학 당시) 수십만 원짜리 음식을 파는 셰프들이 주말에 짬을 내 부랑자들에게 급식을 나눠주는 모습을 보고 충격을 받았다. 이후 한국에서 탈북자나 고아 같은 소외 계층에게 요리를 가르치는 일을 하며 큰 보람을 느꼈다."
샘킴: "혜택 받지 못한 친구들이 사회에 당당한 역할을 하는 식당을 만들고 싶다. 그리고 그 레스토랑에서 만든 수익금으로 도움 받은 친구가 다른 친구를 도와 또다른 레스토랑을 만들면 어떨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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