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 방황하게 되자 학창 시절 가출을 했고, 군대를 다녀온 뒤 사법시험을 준비하더니 변호사 합격과 함께 부인(아내)과도 결혼하게 되었으며, 스토리 펀딩 및 재심을 해온 명성이 알려지면서 유명세를 타기 시작한 박준영 변호사.
최근 방송에 출연하면서 주목되고 있어 박준영 변호사의 모든 부분들을 살펴보겠습니다.
-목차-
- 박준영 변호사 프로필
- 과거 가출 및 방황했던 학창 시절과 군대
- 변호사가 되려던 이유와 사법연수원까지 과정
- 부인(아내)과 결혼과 사무실 개업 그리고 재심 변호사
- 파산했던 시기와 펀딩 그리고 인지도 올라가던 시기와 근황
1. 박준영 변호사 프로필
먼저 박준영 변호사는 1974년 고향 전라남도 완도군 노화읍에서 태어나 2002년 사법시험에 합격한 뒤, 2006년에 사법연수원을 졸업했고, 그동안 '부산 엄궁동 2인조 살인사건', '삼례 나라슈퍼 강도치사 사건' 외에 여러 사건들을 맡아왔으며, 최근에는 방송에도 출연하고 있는 변호사로 프로필은 다음과 같습니다.
박준영
생년월일 - 1974년 ?월 ?일
나이 - 만 47세
직업 - 변호사
학력 - 노화종합고등학교
소속 - 변호사 박준영 법률사무소
가족 - 부인(아내), 자녀 3명
그 외에 인스타그램 하지 않음.
2. 과거 가출 및 방황했던 학창 시절과 군대
어릴 적 박준영 장사를 하셨던 부모님에게서 태어나 과학자의 꿈을 가진채 성장하던 중 초등학교 때부터 공부를 잘하더니 중학교 때는 수석으로 입학할 정도로 공부에 재능이 있는 아이였습니다.
그러나 어머니가 돌아가게 되면서 방황이 시작되었고, 아버지에 대한 반감과 왜 공부를 해야 하는지 이유를 몰랐던 박준영은 중학교 3학년 때 홀로 완도에서 광주로 가출을 하게 되죠.
그 후 홀로 고등학교에 들어가고 나서는 무단결석을 자주 하더니 결국 자퇴를 하게 되는데요. 고등학교 자퇴를 한 뒤 박준영은 서울 왕십리 프레스 공장, 인천 정비 단지에서 일을 하며 생계를 유지하게 됩니다.
그러던 이때 아버지로부터 "제발 고등학교 졸업장이라도 따라"는 전화를 받게 되면서 박준영은 다시 고향인 완도로 돌아오게 되었고, 고향으로 내려와 또래보다 1년 늦게 노화종합고등학교에 입학하게 되죠.
다만 고등학교 시절 싸움도 많이 했던 박준영은 생활기록부에 '준법정신이 미약하다'라고 써져있을 정도로 여전히 말썽을 저지르는 아이였지만, 다행히도 목포에 위치한 목포대학교 전자공학과에 입학을 하게 됩니다.
대학생이 된 박준영은 1학년 1학기 때 장학금을 받았을 정도로 공부를 열심히 한 뒤로 군대를 가게 되었고, 군대 제대 후 우럭, 광어 양식장과 건설현장에서 막노동 일을 하다가 1997년 2학기 때 복학하려고 하는데요.
3. 변호사가 되려던 이유와 사법연수원까지 과정
그런데 당시 받았던 장학금이 사라졌으며, 거기에다가 학창 시절 자신보다 공부 못했던 친구들은 좋은 대학에 갔는데 자신은 '이 모양 이 꼴'이라는 생각에 화가 나게 되면서 박준영은 현재 생활을 바꾸고 싶다는 마음을 가지게 되는데요. 그리하여 대학 진학은 포기한 채 법대에 다니던 군대 선임이 있는 서울 신림동 고시촌으로 향하게 됩니다.
할아버지로부터 "건방지게 감히 사법시험을 공부하느냐"는 말을 듣기도 했지만 1997년 7월 사법시험을 준비하기 위해 고시촌으로 올라오게 된 박준영은 고졸이라는 이유로 고시촌에서 환영받지 못했고, 학원 갈 돈이 없어 강의 테이프를 사서 샤워할 때도 테이프를 들으며, 혼자 옥편을 찾아가며 공부를 해나가게 됩니다.
인생에 있어서 가장 힘들었던 시기를 꼽으라고 하면 이때 공부하던 시기를 꼽았을 정도로 박준영은 몇 번의 불합격을 겪으면서 정말 극한의 고통을 느끼며 노력했으나 2001년 아버지까지 돌아가게 되면서 다시 한번 방황을 하게 되는데요.
다만 이듬해 "마지막으로 한 번만 더"라는 생각에 사법시험을 치른 끝에 결국 2002년 제44회 사법시험에 합격을 하게 됩니다. 그 후 박준영은 은행에서 2억 원을 빌린 뒤 아버지가 돌아가시면서 남긴 빚 일부를 갚고, 공부할 때 생활비를 지원해준 외삼촌에게 1억 원을 빌려주게 되는데요.
은행에서 돈을 빌렸지만 빚을 갚다 보니 돈이 없었던 박준영은 카드 8개로 돌려막기를 하며 생활했고, 끝내 돈이 없어서 연수원 1학년 1학기를 마치고 휴학을 결정하게 됩니다. 그렇게 휴학을 한 뒤 공무원 신분임에도 박준영은 과외를 하면서 돈을 벌게 되죠.
그 후 다시 연수원을 다녔고 아버지가 남긴 빚에 옥죄이던 박준영은 돈을 많이 벌고 싶다는 생각에 연수원생 시절 부잣집 딸을 만나기 위해 결혼정보업체를 통해 스무 번 넘게 선을 보기도 했으며, 사법연수원을 졸업할 때쯤 삼성과 대형 로펌에 잇따라 원서를 넣었지만 고졸 변호사 박준영에게는 아무도 관심을 주지 않았죠.
4. 부인(아내)과 결혼과 사무실 개업 그리고 재심 변호사
어디서도 주목을 받지 못했던 박준영은 2006년 1월 사법연수원 35기로 졸업한 뒤 연수원 지도교수의 추천으로 월급 500만 원을 받아가면서 수원의 한 변호사 밑에서 일을 시작하게 됩니다. 그리고 이 시기(2006년)에 박준영 변호사는 부인(아내)과 결혼을 하게 되는데요.(참고로 서울이 아닌 수원에서 일을 시작한 이유는 흔히 말하는 빽이 없었기 때문)
다만 당시에도 빚으로 인해 생활환경이 넉넉하지 않았던 박준영 변호사는 결혼식에서도 축의금을 받아 식대를 내야 할 만큼 여유가 없는 상황이었다고 합니다.(참고로 현재도 집이 없으며, 박준영 변호사 밑으로 자녀(아이)가 3명이 있다고 합니다)
아무튼 결혼을 한 뒤 변호사 사무실 일도 하면서 국선 변호사로도 일을 하며 돈을 모아가더니, 결국 2007년 7월 수원에서 사무실을 개업을 하게 됩니다. 그리고 수원지방법원에서 한 달에 40~50건에 달하는 국선 변호사 일을 맡으며 활동했고, 다른 국선 변호사와 비교하여 2배 이상 많은 사건을 다루다 보니 법원에서 입소문이 나기 시작하는데요.
돈 되는 사건을 맡고 싶은 이유로 알려지고 싶고, 성공하고 싶다는 절박함을 가지고 있던 박준영 변호사에게 하나의 사건이 찾아오게 됩니다. 그것은 바로 2007년에 발생한 '수원역 노숙 소녀 살인 사건'으로 2008년 1월에 박준영 변호사가 변호를 맡게 됩니다.
성공을 위해 '수원역 노숙 소녀 살인 사건'으로 성과를 내는 것이 절실했던 박준영 변호사는 처음에는 오 로직 성공을 위한 것이 목표였지만 사건을 진행하는 과정에서 박준영은 성공보다는 '지연된 정의'를 부단히 쫓는 사람으로 바뀌게 됩니다.
그렇게 정의를 쫓으면서 '수원역 노숙 소녀 살인 사건'을 5년 만에 해결하게 되었고, 이 사건을 통해 박준영 변호사는 '재심 변호사'로 유명세를 떨치게 되는데요. 다만 이 이후로 내심 돈 되는 사건이 주로 들어오게 될 줄 알았지만 오히려 주변에 억울한 사건들만 들어오게 됩니다.
그리하여 비슷한 사건(재심 변호)들을 계속 안 할 수가 없는 상황이 만들어졌고, 추후 '국정원 간첩 조작 사건', '사회적 약자의 허위자백 사건', '부산 엄궁동 2인조 살인사건', '삼례 나라슈퍼 강도치사 사건' 외에 수많은 사건들을 해결해 나가게 되죠.
5. 파산했던 시기와 펀딩 그리고 인지도 올라가던 시기와 근황
다만 2015년 기준으로 박준영 변호사 상반기 매출은 고작 1000만 원. 사무실 월세와 직원 월급 등을 제하고 나면 한 달에 500만 원가량 적자를 보게 되었고, 결국 월세조차 감당할 수 없게 되자 파산을 하게 되면서 사무실을 정리하게 됩니다.
그 후 박준영 변호사는 1억 원짜리 마이너스 통장의 만기 연장이 안 돼자 고민 끝에 '박상규 기자'에게 요청하여 스토리 펀딩을 열었고, 3일 만에 1억 원이 모이더니, 최종 펀딩 마감일에는 5억 6천만 원의 금액을 달성하게 됩니다.
이후 이런 금전적 도움이 있기 때문에 양심적으로 돈과 권력 없이 억울한 일을 당한 사법 약자들의 재심을 위한 변호는 수임료를 받지 않은 무료로 하기로 더 마음을 굳히게 되죠. 참고로 수임료를 받는 사건을 맡으면 우선적으로 돈을 낸 사람의 사건을 먼저 처리하는 것이 옳기에 수임료 내는 사건을 거부한다고 하네요.
이렇게 스토리 펀딩과 재심을 해온 그간 명성이 알려지게 되면서 박준영 변호사는 방송, 강연을 통해 이름을 알리게 됩니다. 그리고 박준영 변호사의 이야기가 드라마 '날아라 개천용', 영화 '재심'의 롤모델로 쓰이게 되죠. 다만 작품상 실제와는 달리 각색과 사실 왜곡이 들어가기도 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웬만하면 변호사라는 이미지로 인해 예능프로그램에 출연하지 않으려고 했으나 2020년에는 예능 '유 퀴즈 온 더 블록'에 출연하게 되는데요. 처음에는 '유퀴즈' 섭외로 고민을 하던 중 아내(부인)로부터 "MC가 누군 줄 아냐, 감사한 줄 알고 나가라. 애들이 아빠보다 유재석 씨 얼굴을 더 많이 보고 자랐다"라고 혼났었다고 합니다.
그리하여 작년에는 '유퀴즈'에 출연하더니, 최근에는 예능 '대화의 희열 시즌3'에 출연하며 근황을 알렸다고 합니다. 그 외에도 최근에는 '김학의 사건'으로 주목을 받고 있습니다.
다만 그동안 수임료를 받지 않는 재심 변호를 계속 해오게 되면서 생계유지가 어려웠지만 다행히도 강연을 통해 수입을 얻게 되었으나, 요즘에는 코로나로 인해 그것마저 힘들어졌다고 하네요. 앞으로 순수 변호사로서의 일은 사법 약자를 위한 재판만을 하며 살 마음이라고 합니다.
여기까지 다사다난한 삶을 걸쳐 현재 변호사로 활동하고 있는 박준영 변호사에 대해 살펴보았습니다. 글 읽어주셔서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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