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타니 료헤이 인생 이야기
오타니 료헤이라는 일본 배우가 있습니다.
최근에 많이 알려지기 시작한 배우인데, 이 배우를 일본 배우라고 칭하는 것은 문제가 있네요.
오타니 료헤이에 대한 특징적인 점과, 영화 명량에 대한 일본반응이 재미있네요.
또한, 과거 일본 제국 시절 이순신 장군이 일본인들로부터 무척 높은 평가를 받았는데, 대부분의 한국인들은 그 이유를 제대로 모르고 있죠.
오타니 료헤이 사진
모델 겸 탤런트 오타니 료헤이(본명 大谷亮平, Otani Ryohei)는 1980년 10월 1일 일본에서 태어납니다(오타니 료헤이 고향). 올해 35살이죠(오타니 료헤이 나이).
(오타니 프로필 및 경력) 원래 모델 활동을 하다가 한국에서 연기자로 데뷔합니다(2006년 드라마 소울메이트).
이후 드라마 '도쿄, 여우비', 복희누나, 추적자, 구가의 서(사실은 닌자역으로 데이비드 맥기니스가 출연했지만, 많은 사람들이 오타니 료헤이 닮은꼴로 착각함. 또한 배우 박정철과 닮은꼴로도 유명함(오타니 료헤이 박정철)), 끝없는 사랑, 조선 총잡이 등과 영화 최종병기 활, 명량에서 좋은 모습을 보여줍니다.
오타니 료헤이는 원래 배구 선수였습니다.
오타니 료헤이: "일본에서 배구선수였어요. 한데 다른 선수들보다 크지 않은 키 때문에 선수생활에 한계를 느꼈고, 우연히 모델 일을 시작하게 됐죠. 그러던 중 한국에서 일이 들어와 촬영하다 연기까지 손을 뻗치게 됐어요."
오타니의 키는 182cm인테, 사실 배구선수뿐만 아니라 모델로서도 좀 작은 키입니다. 연기자로의 전직이 잘한 결정인 것 같네요.
오타니는 일본에서 패션모델 생활을 하다가 한국의 광고(KT 와이브로, SKT 생각대로)등의 출연을 계기로, 위에서 언급한 대로 한국 드라마에 출연하게 됩니다.
오타니: "한국생활이 정말 재밌어요. 여기 생활이 힘들었다면 일본으로 돌아갔겠죠. 늘 좋은 사람들이 제 주변에 많았거든요. 일하면서 친해진 사람들부터 배구 동호회 사람들과도 자주 만나요. 매주 연습하고 대회에 출전하면서 운동도 하고 우정도 다져요. 다만 오사카에 있는 가족은 많이 보고 싶어요. 누나, 여동생과 특히 친한 편이거든요. 다 큰 아들이지만 늘 걱정하시는 부모님과는 자주 이메일을 주고받고, 전화도 하죠."
사실 오타니가 처음 한국에서 맡은 배역은 한국에 온 일본인 역할이었습니다.
한국말이 서툴러도, 그것이 당연한 캐릭터였죠.
오타니: "일본 활동을 고민하다가 한국에서 일하기로 마음을 먹었어요. 미리 계획한다고 내 뜻대로 되는 것은 아니지만 한국에 특별한 감정이 있고 이곳에서 일하고 싶어요. 언젠가는 일본에 돌아가겠지만 제2의 고향 같은 나라가 생겼다는 게 좋아요."
오타니: "한국에서 사는 일본인이기 때문에 언어가 서툴러도 오히려 자연스러워요. 일본사람이니까 이런 역할을 더 리얼하게 표현할 수 있다는 점이 '한국 배우'로서는 좋은 조건이죠. 언어 때문에 마이너스가 될 수도 있지만 플러스가 될 수도 있잖아요."
언어가 통하지 않는다는 것은 큰 결점이지만, 오타니는 오히려 장점을 찾아서 도전했네요.
위기 속에서 기회를 찾는 자세네요.
오타니 료헤이는 스스로를 '한국 배우'라고 칭합니다.
오타니: "제가 일본에서 활동하다가 한국에 온 배우도 아니고 데뷔부터 한국에서 했기 때문에 저는 일본 사람이지만 한국 배우, 한국 연예인입니다."
오타니: "저로서는 정말 좋은 기회이고 일본에도 괜찮은 친구가 있다는 점을 보여주고 싶어요. 한국에서 활동하는 일본 배우가 많지 않으니까 제가 더 부담도 되고 그만큼 보람도 있는 것 같아요."
사실 우리 모두가 평상시에 경쟁을 하면서 살지만, 오타니 료헤이처럼 언어를 아예 바꾸는 '큰 도전'(이민, 외국 취업 등)은 그리 흔한 일이 아닙니다. 처음부터 배우 생활을 한국에서 시작한 오타니의 도전을 높이 평가하고 싶네요.
물론 한국에서의 배우 생활이 그리 녹록하지만은 않습니다.
현재까지 10년을 한국에서 일했지만, 오타니는 중간에 언어 문제로 대만 등 다른 나라로 잠시 떠나기도 합니다.
오타니 료헤이 김유리 사진
오타니: "한국에서는 공백 기간도 있었어요. 그때는 대만에서 모델 활동도 하고 여러 나라를 여행하기도 했지만 한국이 그리워져서 다시 돌아왔죠. 그리고 시간 나는 대로 꾸준히 연기 연습을 했어요. 특별한 활동이 없을 때 사람들의 시선이 부담스럽기도 했지만 곧 마음을 다잡았죠."
오타니: "여기(한국)서 훌훌 털고 일본으로 돌아가야 하나, 조금 더 기회를 기다려봐야 하나, 많은 생각이 교차했어요. 그런데 이상하게 한계에 부딪히니 욕심이 생겼죠. 지금 당장 기회가 오지 않더라도 한국에서 배우로 인정받는 일만큼은 포기하고 싶지 않았어요. 언어가 완벽하지 않더라도 눈빛이나 행동에서 한국인의 정서를 뿜어낼 수 있다고 생각했죠."(오타니 료헤이 한국어가 완벽하지는 않음)
결국 김한민 감독이 그에게 손을 내밉니다. 바로 영화 '최종병기 활'을 통해서였죠.
오타니: "김한민 감독은 열정이 대단하신 분이다. 그래서 그 모습을 보고 열심히 따라가야겠다는 생각으로 임했다. 사실 ‘최종병기 활’ 촬영이 끝났을 당시엔 ‘조금 아쉬웠지?’라고 했었다."
그리고 이것이 인연이 되어서 오타니는 영화 명량에 출연하게 됩니다.
바로 일본군이었다가 이순신의 인품에 반하여 조선군으로 귀화하는 '준사'역이었죠(준사는 항왜로 실존 인물임).
김한민: "오타니 료헤이와는 감독과 배우로서 돈독한 우정이 있다. 나를 믿고 준사 역을 하겠다고 했다. 우려가 되는 부분도 있었지만 이 영화를 통해 그가 한일 양국의 가교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라 조언했다. 그 부분에서 오타니 료헤이도 용기를 냈다. 지금껏 오타니 료헤이의 연기 중 ‘명량’이 가장 좋았다. 힘도 있는데다 눈빛도 마음에 들었다."
오타니: "아무래도 일본을 배반하고 조선 편에 서는 캐릭터이다 보니 주변에서 걱정이 많았다. 최민식 선배님은 촬영장에서 주변 일본 친구들의 반응을 물으면서 괜찮냐고 신경을 많이 써주셨다."
사실 아무리 실존인물이라고 하더라도 일본인의 입장에서 보면 준사는 자신의 조국을 배반한 '매국노'가 됩니다. 그런 인물을 연기한다면 부담이 되지 않을 수가 없죠.
최민식: "오타니 료헤이가 혹시 고향에 가서 두드려 맞는 건 아닐까라는 생각도 들었다. 걱정도 돼서 술 마실 때도 진짜 괜찮은 거냐고 물어봤다. 중화권은 우리 영화에 공감할 수 있지만 일본은 그렇지 않지 않나. 세계적으로도 그렇고 아시아에서 한국 영화에 다들 관심을 갖고 있다. 그런데 얼마나 도드라져 보일까 싶었고 큰일 나는 거 아닌가 싶어 걱정됐다. 김한민 감독도 그렇게 느꼈을 거고 그래서 고마워했다. 그 친구에게 아무 일 없길 바란다."
최민식: "우리의 역사가 다른 민족을 그렇게 한 적은 없지만 역지사지로 그런 입장이면 그런 용기를 낼 수 있을까 싶다. 한국의 영화 시스템을 배우고 싶고 배우로 욕심이 있다고 해도 쉽지 않은 결정이다. 그것도 그냥 일본인 역할도 아니고 일본 입장에서 보면 역적이니까. 요즘 정치적인 환경 속에서 걱정이 됐다."
사실 최민식의 말처럼 준사 역에 출연한 오타니의 용기가 대단한 것 같습니다.
오타니: "당시 조선시대 임진왜란의 기본적인 사료들을 찾아보고 이순신 장군에 대한 전투 기록을 살펴봤다. 놀라운 부분이 참으로 많더라. ‘명량’ 시나리오를 봤을 때도 과연 이 전투를 대체 어떻게 이겼는지 그림조차 그려지지 않았다."
오타니: "준사는 백성들에게 가혹한 피해를 주는 명분 없는 전쟁을 끝내고 일본으로 돌아가고 싶어 하는 캐릭터라고 설명돼 있는데 그 이유로 조선 수군 쪽으로 마음을 돌린 건 아니라고 봤다. 준사는 이순신 장군에 대한 존경심 때문에 함께 옆에서 싸우고 지켜드리고 싶다는 마음으로 조선을 택했다고 생각했다. 주변에선 내가 준사 역을 맡는다고 했을 때 우려의 목소리가 높았지만 난 준사 역이 멋있어 보였다."
사실 임진왜란은 명분없는 전쟁이고, 조선군이나 일본군이나 병사들은 참혹하게 죽어간 전쟁이죠. 그런 전쟁의 와중에 갈등하는 준사의 심정을 오타니가 잘 표현한 것 같습니다.
물론 오타니에게 가족의 조언도 큰 도움이 됩니다.
오타니: "아버지가 역사에 대해 관심이 많다. ‘명량’이란 작품을 하게 될 것 같다고 말씀드렸더니 이것저것 당시 임진왜란 역사에 대해 말씀을 해주셨다. 그러면서 ‘준사 역을 맡기 위해선 확실하게 어떠한 각오를 갖고 임해야 한다’며 기본적인 역사를 파악한 뒤 연기해야 한다고 조언해주셨다."
오타니: "아무래도 일본을 배반하고 조선 편에 서는 캐릭터이다 보니 주변에서 걱정이 많았다. 최민식 선배님은 촬영장에서 주변 일본 친구들의 반응을 물으면서 괜찮냐고 신경을 많이 써주셨다."
오타니: "수개월 동안 함께 촬영하면서 내가 괜찮다고 하는데도 최민식 선배님이 걱정을 많이 하셨다. 다른 배우들도 혹시 나에게 무슨 일이 생길까 노심초사 했었다. 촬영 중반 한일관계가 악화된 적이 있었는데 그때 최민식 선배님이 ‘무슨 일이 있으면 내가 다 도와주겠다’고 하셨다. 모두들 잘해주시고 날 일본인이 아닌 함께 연기하는 배우로 봐줬다."(오타니 료헤이 일본반응)
오타니의 용기뿐만 아니라, 최민식의 인간적인 면도 대단한 것 같습니다.
오타니는 현재 여자친구가 없습니다(오타니 료헤이 여자친구).
오타니: "한국 여친(여자친구)를 사귀어보고 싶어요. 솔로로 지낸 기간이 너무 오래됐거든요. 급해요. 거의 매일 남자들하고만 으싸으싸하니까 만날 기회도 없는데, 어디를 가면 상냥하고 부드러운 여자친구 만날 수 있나요? 좋은 사람 있으면 결혼까지 하고 싶어요."(오타니 료헤이 결혼하지 않음)(오타니 료헤이 미혼)(오타니 료헤이 아내 부인)
현재 영화 명량은 관객수 천오백만명을 돌파했을 정도로, 한국에서 엄청난 인기를 얻고 있습니다(8월 20일 기준 누적관객수 1511만 7541명)(명량 관객수).
한국인들의 3명중 한명이 이 영화를 볼 정도로 센세이션을 일으키고 있죠.
그렇다면 일본에서의 명량 평가는 어떨까요?(명량 일본반응)
2014/07/24 (목) 18:32:41.56 ID : Pa + Aq8kG
우리나라 만세의 망상 역사관이야.
2014/07/24 (목) 18:36:28.23 ID : fFBj558w
일본은 이토 히로부미 영화를 만들거다
2014/07/24 (목) 18:38:46.37 ID : edt5emH8
휴전 후 수송선단을 덮친 아저씨던가?
2014/07/24 (목) 19:05:31.14 ID : zmQbg + rI
국가의 명령을 무시하고 철수하는 일본군을 공격했다가
시마즈군에게 당하고 죽은 바보같은 지휘관이야.
2014/07/24 (목) 19:15:45.36 ID : lhV / MVLJ
한국인이 북한의 노예가 되길 바란다! 정말 화가 난다!
영화 명량의 한 장면
극우 채널인 2ch에서의 반응이긴 하지만, 일본인들의 심정이 명량 해전(혹은 이순신)에 대해서 그리 좋지 않은 것이 사실입니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약 백여년전 일제 강점기 전후에 일본에서는 이순신을 아주 높이 평가했습니다.
(이순신과 도고의 일화)
러일전쟁 후 일본의 해군이 부각되고, 각국의 해군사관생도들이 일본을 방문합니다. 그때 미국 해군사관생도가 도고 헤이하치로 제독에게 이렇게 묻습니다.
미국 해군사관생도: "각하께서는 어떤 해군 장군을 가장 존경하십니까?"
도고 헤이하치로: "나는 조선의 이순신 장군을 가장 존경한다네. 그분에게 비한다면 나는 아무 것도 아니라네."
아마 미국인들은 도고가 호레이쇼 넬슨(영국 제독)을 언급할 것으로 예상했겠지만, 도고의 입에서는 전혀 엉뚱한 이름(당시 조선은 미국에 잘 알려지지 않았음)이 튀어나온 것이죠.
사실 이 일화는 한국인들에게도 널리 알려진 유명한 이야기입니다만, 이것의 출처가 불분명하기에, 진위 여부는 확인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당시 엄청나게 많은 일본의 공식 기록들이 이순신 장군을 굉장히 높이 평가한 것은 사실입니다.
대표적인 예로 1908년 발행된 일본해군의 사토 테츠타로 제독은 저서 《제국국방사론》에서 이순신을 이렇게 언급합니다.
- 역사상 최고의 제독은 동방의 이순신과 서방의 호레이쇼 넬슨이다. 거기에 넬슨은 인간적, 도덕적인 면에선 이순신에 떨어진다. (이순신이) 조선에서 태어났다는 불행 덕분에 서방에 잘 알려져 있지 못하다. 그는 진정으로 위대한 지휘관이었고 300여년 전 해군 전술의 달인이었다.
메이지시대부터 있었던 일본의 이순신 평가는 이렇게 그에게 굉장히 호의적이었습니다. 왜 일본은 이순신을 이렇게 높이 평가했을까요?
그것은 일본내의 세력 다툼때문이었습니다.
제국주의 일본에서는 육군과 해군의 주도권 다툼이 항상 발생했는데, 이때 일본 제국 해군이 항상 들고 나왔던 카드가 바로 이순신 장군이었습니다.
- 임진왜란을 봐라, 해군이 얼마나 중요하냐? 해군없으면 육군이 아무리 날고 기어도 전쟁에서 못이긴다.
아무리 일본이 활용을 하더라도, 이순신 장군의 업적과 본질적인 가치가 훼손되지는 않겠지만, 그래도 일본의 팽창주의 시대에 이순신 장군이 이용당했다는 사실은 무척 기분이 나쁘네요.
그리고 현재 일본에서 이순신은 굉장히 저평가되고 있습니다.
역사를 제대로 공부한 역사가들 사이에서는 이런 일이 벌어지지 않지만, 역사를 제대로 공부하지 못한 일반인들 사이에서 우익 감정과 맞물려 이순신에 대한 저평가와 폄하가 일어나고 있죠.
그렇기에 위의 댓글처럼 '국가의 명령을 무시하고 철수하는 일본군을 공격했다가
시마즈군에게 당하고 죽은 바보같은 지휘관이야.'라는 반응도 자주 나오고 있습니다.
사실 이순신 장군이 전사한 노량해전은 종전 전의 전투로, 원래 사천의 왜성에 대한 포위전을 수행하다가 적의 응원군을 차단하기 위하여 자연스럽게 벌어진 전투였죠.
일본인들이 역사 공부를 제대로 하지 못하기에, 이런 당시 상황을 제대로 알지 못합니다.
우리라도 역사를 제대로 알아서, 이순신 장군의 업적을 잘 지켜야 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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