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표적인 남성 트로트 가수로 꼽히는 박상철이 개인사로 구설에 올랐습니다. 박상철은 가수가 되기 위해 상경을 했다가 실패한 뒤, 다시 상경을 반복하다 결국 트로트 가수로 성공한 인물로, 유년 시절 어려웠던 시간들이 조명되면서 인간승리의 케이스로 부각되기도 했습니다.
특히 영화 '전국노래자랑'의 주인공 모티브가 박상철이라는 점에서도 관심을 받곤했는데요. 극중 미용사 박봉남은 '전국노래자랑'에 출연해 노래로 아내를 감동시키는 모습을 보여주고 가수의 꿈도 이루게 됩니다.
실제 박상철 역시 강원도 삼척에서 아내와 함께 미용사로 일했었는데요. 1993년에 전국노래자랑에 출연했고, 2000년에 1집 앨범 '부메랑'을 발표했습니다.
그의 러브스토리와 성공스토리, 여기에 실력까지 함께 시너지를 내면서 대중의 관심과 사랑을 받아왔던 것이 박상철이었습니다.
하지만, 인간승리에 가까웠던 그의 성공담이 이제는 개인사로 인해 얼룩지는 모습을 보이고 있습니다. 불륜을 저질렀고, 아내와 이혼하고 상간녀와 재혼한 뒤, 상간녀와 폭행 등의 혐의로 고소와 맞고소를 주고 받으며 현재는 이혼소송 중이라는 소식이 알려졌기 때문입니다. 디스패치 보도를 통해서 세상에 알려진 내용인데요. 사람 사는 게 참 뭐길래 이렇게 복잡하고 지저분하고 상처를 줘야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박상철의 이혼 전쟁
박상철은 이런저런 어려움 끝에 2005년 3집 '무조건'으로 일약 스타덤에 올랐습니다. '자옥아' '황진이' 꽃바람' 등을 잇따라 히트시켰는데요. 이때부터 트로트의 황태자라는 별명을 얻게 됐습니다.
어쩌면 비극의 시작은 박상철이 불륜을 저지르면서부터였을지 모릅니다. 박상철은 전처 A씨와 결혼 상태에서 상간녀 B씨를 만났고, 심지어 혼외자까지 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결국 박상철은 A씨와 이혼했고, B씨와 재혼했습니다. '사랑과 전쟁'에서나 볼 법한 전형적인 불륜남의 행각을 보인 것입니다.
그러고 나서 잘 살기라도 했으면 또 모르겠지만, 아쉽게도 박상철은 현재 B씨와는 이혼 소송 중인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결국 불륜을 통해 첫 번째 결혼 생활이 파국을 맞았고, 그 불륜은 두번째 파국으로 이어진 셈입니다. 특히나 상간녀와의 결혼으로 이어진 2번째 결혼은 폭행으로 얼국지면서 형사 고소도 반복적으로 이어진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양측의 주장은 엇갈렸고, 일단 경찰은 박상철의 주장을 받아들인 모습입니다.
박상철의 첫 번째 결혼
박상철은 지난 1992년 첫 번째 부인 A씨와 결혼했습니다. 3명의 자녀를 뒀고, 아내와 함께 강원도 삼척에서 미용실을 차렸습니다. 미용실 운영은 아내가 주로 맡았고, 박상철은 트로트 가수의 꿈을 이어갔던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사실상 경제적인 부분을 아내가 책임지면서 박상철의 뒷바라지를 했던 셈입니다.
하지만, 가수의 꿈은 쉽지 않았습니다. 박상철은 10년 넘게 무명으로 지냈습니다. 그러다 훅 하고 터진 것인 '자옥아'였습니다. 2002년의 일입니다. 이후 '무조건' '황진이' 등이 잇따라 히트를 하면서 연타석 홈런의 주인공이 됐고, 그렇게 트로트의 황제, 트로트의 대세가 됐습니다.
박상철의 불륜
박상철의 첫 번째 결혼이 위기를 맞은 것은 그의 불륜 때문으로 전해집니다. 2007년이었습니다. 당시 상간녀 B씨는 13살 연하, 그때나이가 27살이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박상철은 이른바 두 집 살림을 차렸습니다. 그때가 2010년, 그리고 2011년에 혼외자 딸을 낳았습니다.
박상철의 이혼
그렇게 불륜을 저지르고 혼외자까지 낳았던 박상철은 2014년 첫 번째 부인과 이혼했습니다. 혼인 파탄의 책임은 물론 박상철의 몫이었습니다.
박상철의 두 번째 결혼
그리고나서 박상철은 B씨와 생활을 했고 2016년 혼인신고를 하며 두 번째 결혼이 법적으로 성립됐습니다. 그렇게 상간녀였던 B씨는 법적으로 박상철의 아내가됩 됩니다.
박상철의 두 번째 이혼
불륜의 끝은 원래 아름다울 수 없습니다. 윤리와 도덕을 무너뜨린 범죄인데, 이들이 행복하면 세상이 너무 불공평할테니까요.
이런 불륜의 원칫에 박상철이라고 예외는 아니었습니다. 혼인신고 4개월 만에 이혼 소장을 법원에 접수하게 됩니다. 이렇게만 마무리됐어도 논란은 덜 했겠지만, 이혼 소송과 별개로 형사고소가 이어집니다. 폭행과 폭언, 협박 등의 혐의였습니다.
박상철은 폭행치상과 특수폭행, 협박 등의 혐의로 잇따라 아내였던 B씨로부터 고소를 당했습니다. 욕을하고 때리고 온몸에 상처가 났다는 것이 B씨의 주장이었습니다.
물론, 박상철은 정면 반박했습니다. 오히려 B씨가 욕을 했고 손과 발로 때렸다는 것이었습니다.
법원은 박상철의 손을 들어웠습니다. 2019년 7월 박상철의 폭행 혐의에 대한 의정부지방법원 고양지원의 1심 판결은 아래 내용과 같이 내려졌습니다.
"B씨는 박상철에 대해 좋지 않은 감정을 가지고 있었다. 게다가 진술을 거듭할수록 폭행 정도를 키워가고 있다. B씨가 의도치 않은 신체적 접촉을 폭행이라 신고한 후 내용을 과장했을 가능성이 있다"
박상철 아동복지법 위반으로 피소
박상철은 B씨와 사이에서 태어난 딸을 폭행했다는 혐의로 피소되기도 했습니다. 이때가 2019년 9월입니다. 박상철의 딸은 해바라기 센터에서 박상철이 7년 동안 5번 정도 때렸다고 진술하면서 박상철에 대한 고소로 이어졌습니다.
박상철은 B씨가 자신의 마음대로 일이 되지 않자 딸까지 끌어들였다며 억울하다는 입장을 보였고, 검찰은 박상철의 주장을 받아들였습니다. 박상철의 아동복지법 위반에 대해 '혐의 없음'으로 불기소 결정이 내려진 것입니다.
불륜, 상간녀와의 재혼, 이혼 소송, 폭행 고소. 박상철이 여전히 가수로서의 역량을 가지고 있을지 몰라고 하나의 인격체로서의 역량은 바닥으로 떨어진 모습입니다. 참 안타깝네요.
박상철 프로필
이름 : 박상철
출생 : 1969년 1월 19일 (51세)
강원도 삼척시
데뷔 : 2000년 1집 앨범 부메랑
박상철은 '전국노래자랑'이 낳은 대표적인 스타 가운데 한 명입니다. 1993년 강원도에서 열린 전국노래자랑에 도전해 가수 유열의 '화려한 날은 가고'를 불렀는데 최우수상을 받으며 가수의 길로 들어설 수 있는 계기를 만들었습니다. 당시 박상철이 운영하던 미용실 '박상철 헤어아트'까지 유명해졌습니다.
박상철이 2000년 1집 '부메랑'으로 데뷔할 수 있었던 것도 전국노래자랑에서 만난 인맥으로 기획사를 만나게 됐기 때문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때도 경제적인 상황이 좋지 않아서 재연배우, 리포터 등으로 일하며 생계를 유지했던 것으로 전해집니다.
이후 2001년 '자옥아'가 히트를 치면서 생계난이 풀리기 시작했고 '무조건'으로 이어진 연타석 흥행으로 박상철은 일약 스타덤에 오르게 됩니다. 그렇게 10년 동안 이어졌던 무명생활을 청산할 수 있었습니다.
박상철은 유명세를 얻은 뒤에도 개인사에 대해서는 잘 알려지지 않았었는데요. 이제사 생각해 보면 불륜으로 얼룩진 개인사를 감추기 위해서였을지 모르겠다는 추측도 가능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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